삼일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삼일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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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독립을 위한 민족의 함성이 전국적으로 퍼졌던 그 날 이후로 89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 89주년을 맞는 삼일절을 맞아 우리 국민들이 국경일의 역사적 사건을 되새겨 보며 그날의 정신을 이어 받기를 바래본다.

1910년 이후 한국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우리민족은 의병운동 및 민족계몽운동으로 항일 독립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일본은 이와 같은 독립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무단통치를 실시해 항일독립투사들을 학살·투옥하고, 일체의 모임과 언론활동을 금지하였다. 교육에 있어서도 우민화정책을 실시하여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등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했다. 이러한 일본의 압제는 지식인, 학생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반일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3·1운동까지 이르게 됐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명 중 29명이 방에 모여서 손병희의 제의로 한용운이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짐하는 인사에 이어 그의 선창으로 만세 3창을 고하였으며, 불과 15분 만에 전격적으로 낭독식을 끝내고 경찰이 오자 스스로 체포되어 갔다. 한편 파고다공원에서는 수천 명의 학생들이 계획과 달리 별도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학생들의 시위운동에 전국에서 상경하여 대기하던 시민들이 가담해 그들의 독립시위의 의지와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뿐만 아니라 3월 10일 이후 만주, 미주,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국내 3·1운동에 호응하여 만세시위운동이 확산되었다. 3.1운동 이후 3개월간의 전국 독립만세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참가인원수 202만여 명, 사망자수 7천500여 명, 부상자 1만 6000여 명, 체포인원수 4만 7000여 명, 불탄 교회당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입은 인명상, 재산상의 피해와 3·1운동의 대내?외적 의의를 생각해 본다면 삼일을 공휴일로만 여겨 그저 노는 날, 쉬는 날이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삼일절은 노는 날, 쉬는 날이 아닌 국민 모두가 삼일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어야 한다. 다가오는 3·1절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경일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한 마음으로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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