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선생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1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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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남편이 이 말을 옆에서 들으며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았으면 질투가 날 법하다. 칼럼을 기다리는 표정이 역역하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때까지 이 말 밖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교양이 넘치는 여사였다. 돋보기 칼럼을 처음부터 스크랩하는 중년 남자가 있다는 말을 잘 아는, 창의성이 대단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창의성이 대단한 그 분은 다른 신문에서도 칼럼의 내용을 보고 자신도 스크랩을 한다. 당연히 돋보기도 창의성이 있는가 없는가의 기준으로 판정하고 있을 법하다. 그 애독자의 얼굴도 직업도 돋보기는 모른다.

돋보기가 칼럼을 쓸 때 문득 문득 머리에 떠올리는 사람은 이들 두 사람이다. 그냥 옆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이다. 돋보기가 한참을 애독했던 이규태 코너도 이런 고백을 한 일이 없다. 오늘 이런 사설(私說)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른 독자들도 신문의 칼럼이 어떤 특성과 개성(특색)을 띠고 있어야 하는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하나는 사실(事實, fact)의 기술(記述)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실의 해석(解釋, interpretation)이다. 대개는 전반부가 사실이고, 후반부가 사실에 관한 해석이다. 사실의 기술에는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기자의 의견이 배어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교묘하게 술수(術數)를 부려 기사의 제목과 활자의 크기에서 기자 및 데스크의 의견이 표현될 수도 있다. 신문은 항상 그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그러는 신문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해석은 신문사의 방침(의견)이 천명되는 사설(社說)을 축으로 하고 이 축에 연결되는 바퀴살들에 해당되는 칼럼의 부분에서 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이 점 때문에 외부 필자의 칼럼이 게재되는 경우에는 주석을 달아놓는다. 즉, 신문사의 의견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여기 해석의 폭과 방법이 너무 넓고 다양하여 쉽게 말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지적하라면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석의 원조는 영어의 hermeneutic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솝우화의 해석에서부터 성경과 불경의 해석, 현상학(現象學)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너무 넓다. 이 해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유명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자만의 경고로 해석되었으나, 다른 해석은 거북이가 엉큼하고 비열하다고 한다. 잠자는 토기를 깨워서 정정 당당하게 경주하여 져야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성경의 해석만을 전공으로 하는 신학자 신부들이 지금도 있고, 유태교의 랍비들도 평생을 이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칼럼이 이런 해석의 범주에 들어가다 보니 칼럼을 쓰는 사람의 개성이 어쩔 수없이 들어난다. 이규태의 칼럼이 정치적으로 회색이어서 항상 말꼬리 물기로 끝난다는 비평이 있었어도 그만의 개성이었다. 최근 조용헌의 칼럼은 자신의 명리학적(命理學的) 배경에 터한 수필이 자주 등장한다. 서양의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페터 빅셀, 푸른 숲)’의 내용은 스위스의 어느 주간지에 실렸던 글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다. 적어도 돋보기에게만은 아주 잘 써놓은 수필이다. 이규태, 조용헌, 빅셀이 신문과 주간지의 특성을 몰라서 수필 같은 칼럼을 게재했을까를 되새겨본다.

피천득의 말대로 붓 가는대로 써놓은 글이 수필이라면, 돋보기도 그녀와 그분을 생각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까 칼럼 같은 수필이 나오고, 수필 같은 칼럼이 나온다.

며칠 전에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의원 출석수가 정족수를 못 채울 정도로 자리가 비워있음을 한탄하는 국회의장의 말을 듣고 단상에 올라간 울산 출신 국회의원 조승수가 ‘국회에 7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우리 진보신당만 전원 참석했습니다.’ 진보신당에서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한 사람 조승수뿐이다. 이것을 칼럼으로 쓰면 정치성을 띄게 되고 수필로 쓰면 ‘우리나라 정치에도 이제 유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가 될 것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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