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2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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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 후를 내다보며 어찌어찌 하여 장관, 수석 비서관 물망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꿈을 갖고 있으면 지금부터 세심하게 투자전략을 짜야 한다.

이 말은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에 쓰여 있는 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를 살짝 바꾸어 놓은 것이다. 94세까지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면서도 이렇게 해학적(諧謔的)으로 인생을 조망(眺望)할 수 있다는 데에 감명을 받는다.

1950년대 초, 필자가 졸업한 지방 국민학교(초등학교) 남자 졸업생들의 상당수는 장래 희망을 과학자, 군인,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었다. 6.25 전쟁을 치르면서 군인의 인기가 높았던 것 같다. 새 교육의 힘으로 새로운 학문분야인 과학이 소개되며, 천자문 외우기가 아닌 비커, 시험관 따위의 실험하는 장면이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두어 명 정도가 대통령을 꿈꾸고 있었다. 동창 중에 유일하게 장관 반열에 오른 친구 하나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회의원에 입후보도 못해보고 변호사 일에 전념(?)하고 있다. 여자들은 간호원(당시에는 간호사가 아니었다), 선생님, 그리고 가정주부 순으로 장래 희망을 나타냈었다. 그런데 간호원은 딱 한사람 나왔다.

1960년대 말, 우리나라 여자대학생들의 신랑감 제1순위는 ‘외교관’이었다. 다음이 ‘회사 사장’이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할 때여서 미국에 가고 싶고, 스위스 알프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때라서 사장은 부자계급의 대명사이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행동하는 학생은 극히 드물다. 최근에야 민주당 경선 후보 오바마가 그랬었다고 하여 선거판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대개는 어찌어찌하다보니 후보자 대열에 끼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김대중, 김영삼 정도가 조금 일찍 대통령의 야망을 품었지 박정희도 전두환도 노태우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려는 포석(布石)을 한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장관, 수석비서관의 희망도 늦게야 철들어가면서 어찌어찌 하여 갖게 된 것이다.

지금은 21세기의 초입이다. 앞으로 40년 후를 내다보며 어찌어찌 하여 장관, 수석 비서관 물망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꿈을 갖고 있으면 지금부터 세심하게 투자전략을 짜야 한다.

지도자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해두어야 한다. 그 첫 째가 정직한 생활, 위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일관된 행동을 해야 한다. 다음이 돈을 벌면서 깨끗하게 벌어야 하는 것이다. 1950년대 방식으로 모리배(謀利輩)가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끝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철저한 공부를 해두어야 한다.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 없는 사람을 찾는다. 바로 자기 눈높이에 맞추어 사람을 찾는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후보감과 수석비서관 후보감을 검증하는 과정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쉽게 탈락된 모양이다. 과거에 세심한 투자, 즉,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별의별 기록들이 보관되고 누적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걸러냈어도 다시 문제되어 자진 사퇴하는 후보자가 나온다. 하루를 장관으로 일했어도 장관 연금이 국민세금으로부터 나올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잔인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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