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1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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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을 뒤로하고 봄을 재촉하는 가녀린 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던 지난 8일 점심나절, 검은 관용차 한 대가 울산시청 ‘하늘공원’의 쌍둥이 석조조형물 앞에 조용히 바퀴를 세웠다. 같은 시각, 검은 우산 셋이 공원 안길을 따라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책에 나선 ‘비의 나그네’들일까? 새로 단장한 청사 현관에서 어렴풋이 시야에 잡힌 베이지색 바바리코트의 임자는 어쩐지 낯이 익은 듯했다. 얼굴의 윤곽은 꺾어진 길을 따라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더욱 또렷해졌다. 우산 셋의 주인은 박맹우 울산시장과 이기원 경제통상실장과 젊은 수행비서였다. 일행이 분수대를 지나칠 무렵 장난기 같은 궁금증이 접근을 부채질했다. 10분 남짓 무엇을 눈여겨 보았을까? 시장은 뜻밖의 조우에 놀라면서도 밝은 웃음으로 말을 받았다. “(점심식사를) 조금 일찍 마치고 비도 온 김에 물고기하고 정원을 좀 둘러봤지요.” 같은 날 오전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 봄비 이야기는 시장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등장했다. “봄비는 생명수와도 같은 것입니다. 출발하는 날에 단비 같은 봄비가 내려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운우 전 경남지방경찰청장은 고 김수환 추기경을 생전에 알현했을 당시의 덕담을 화제로 삼아 단비 예찬론을 폈다. “추기경님의 말씀을 듣고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필요하듯 시민들의 마음속에 단비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봄이 오는 소식은 그보다 사흘 먼저 반구대에서 들려왔다. 반구대암각화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부인 김영명 여사의 권유로 지난 5일 오후 바위그림을 보고 돌아서다가 대곡천 물에 한쪽 다리를 적시고 말았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그의 실족은 봄기운에 막 녹아내리기 시작한 가장자리의 얼음 때문이었다. 사족 삼아 뒷이야기를 전하면, 봄의 도래가 감지되던 바로 그 얼음판 위에서 같이 갔던 강길부 의원은 보란 듯이 스케이트 흉내를 냈고, 박맹우 시장은 조심조심 풀리기 시작한 초봄의 강을 건넜다. 정몽준 대표는 자신이 물에 빠진 사실을 굳이 감추려하지 않았다. 의연하게 반전(反轉)의 화제거리로 삼아 ‘인간적’ ‘낙천적’이란 점수를 모처럼 따기도 했다. 국정보고대회가 열리기 직전 울산상의 앞마당에서 흠뻑 젖은 왼쪽 바지를 가리키며 당원들에게 건넨 정 대표의 첫 인사는 “반구대 갔다가 빠지는 바람에…”였다. 울산상의 대강당의 국정보고대회 특강에서는 자신의 실족 사고를 선친(故 정주영 회장)이 겪었던 조선소 앞바다 승용차 추락 사고와 연계시키며 대업 성취의 전조(前兆)로 해석하려고 애썼다. ‘물에 빠진’ 이야기는 봄비가 사흘째 내리던 10일 점심나절에도 이어졌다. 프레스센터에 들린 울산시의회 윤명희 의장은 새내기의원 시절 어느 봄날 겪었던 경험담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자제의 서울손님을 맞아 돌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우봉포구 앞바다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구멍 난 바닥에서 바닷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될 뻔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장희 시인의 명시 ‘봄은 고양이로다’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봄은 무딘 감정의 정치인들 마저 가슴 설레게 만드는 계절일 수 있다. 비는 철마다 내리지만 특히 봄에 내리는 비는 서정의 극치이기에 그토록 세인의 사랑을 한 몸에 차지하는지 모른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넉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해빙과 함께 들려오는 봄비의 추적거리는 소리를 정치인들과 함께 듣는다. ‘단비 같다’는 봄비는, 새내기정치인이든 기성정치인이든, 한결 같은 그들의 꿈이 ‘정치적 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속삭이고 있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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