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
지상에서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2.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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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언덕 일출 일몰 함께 보는 경계
     

[개요]
한 지점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3곳 있다.
회야강 하구인 울주군 온산읍 강양리 개분재, 외황강 하구인 남구 황성동 개운포성지, 태화강 하구인 동구 화정동 미포조선뒤 망계산이다.
세 곳 모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에 있고 끝이 돌출돼 있다.
이 지점에서 동쪽은 트인 대양, 서쪽은 긴 강이 뻗어있다.

회야강 상류로 뻗은 지평선은 천성산까지 20km이다. 외황강 상류쪽은 문수산과 남암산까지 10km이고, 태화강은 가지산까지 30km다. 이곳에는 삶을 지배하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장엄한 광경인 일출과 일몰이 매일 전개된다.
이 3개의 조망점 아래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경계이고, 안개와 바람이 드나드는 병목이다. 이 병목 안쪽은 각각 서생들, 화창들, 삼산들이란 고유 이름을 지닌 충적평야가 전개돼 있다.

[답사기]

태화·외황·회야강 하구언덕은 일출·일몰 함께 보는 요처
음악이 어떤 지형의 이미지를 그릴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음악이 뿌린 정서는 기쁨과 쓸쓸함이 뒤섞인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한 자리에서 볼수 있는 특이 지형에 매료돼 있었다. 그곳에서는 지상에서 가장 큰 기쁨과 쓸쓸함이 교차되는 장면을 동시에 볼수 있었다.

그곳은 회야강, 외황강, 태화강 하구에 각각 있는 언덕 세곳이다. 세곳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에 있다. 바다는 가장 이른 일출을 보여주고, 멀리 트인 강은 가장 긴 낙조를 보여준다. 이런 장소에 매혹되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이 가장 장엄하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금난새의 열린음악회’가 있었다. 연주곡 가운데 하나가 이탈리아의 로시니가 작곡한 현악 소나타 2번 가운데 2악장이었다. 10분간 연주된 이 선율은 회야강 하구의 언덕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 이미지는 노을빛에 강물결이 일렁거리듯, 또는 언덕에 널린 흰 빨래들이 석양을 받아 펄럭이는 풍경처럼 쓸쓸함과 건강함이 섞인 것이었다.

그런데 음악이 지형의 이미지를 옮길수 있는 걸까? 카이스트 물리학자 장재승박사는 미국 로키산맥에 줄지어 있는 산봉우리의 높낮이를 컴퓨터로 처리해 음악을 작곡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음악이 자연패턴에서 리듬을 따올 때 아름답다고 했다.
로시니의 소나타2번은 그의 고향인 지중해의 한 지방 이미지가 반영된 것으로 여겨졌다.
해 지는 광경은 쓸쓸하다. 몸을 덥혀주고 야수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준 빛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지구자전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때 느꼈음직한 원시적 슬픔이 깔려있다고 볼수있다. 그러나 해가 다시 떠오른다는 확신이 생긴 이래 그 쓸쓸함에 희망이 겹치는 이중 감정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중 감정은 해질때 뿐 아니라 떠오른 해에게도 느낀다. 이어령박사는 2009년 5월 한 신문사와 인터뷰에서 “여섯 살때 한여름 햇빛이 쏟아지는 보리밭길을 혼자 굴렁쇠를 굴리고 가다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며 “나중에 그것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를 경험한 것인 줄 알게됐다”고 술회했다. 이 박사의 술회는 여름 낮 해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했을 때 어둡고 차가운 죽음을 연상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각성은 이따금 장엄한 풍경속에서 생겨난다.

해가 뜨고 지면서 하늘을 물들이는 광대한 노을은 어떤 사원도 만들기 어려운 신성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그러한 광경을 한 자리에서 경험할수 있는 곳은 제단과 같다.
회야강 하구 나루터 뒤 언덕, 외황강 하구 개운포성터, 태화강 하구 망계산이 그런 곳이다.

[플러스α]

고대사찰 위치 그믐날 일출각도 117도에 맞춘 까닭은
바다서 갓 떠오른 햇빛을 산속에서 맞기 위해서였다

동짓날에 명선도에서 117도 방향으로 빛을 쏘면 운흥사 뒤 은회색 돌무더기에 닿는다. 같은날 처용암에서 같은 방향으로 빛을 쏘면 망해사에 닿는다. 또 대왕암에서 석남사, 화암에서 신흥사가 같다.

이들 대응 관계는 각 지점을 관통하는 하천이 빛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명선도에서 운흥사 사이에는 회야강이, 처용암에서 망해사 사이에는 외황강이 뻗어있다. 태화강은 대왕암 주변과 석남사를 잇고, 신명천은 화암과 신흥사를 잇는다.
4개의 사찰은 각 하천의 최상류에 있고 모두 신라때 조영됐다. 이 기묘한 일치는 일출각도와 하천의 선형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태양은 언제나 누구나 숭배하는 절대적 가치다. 가장 어둠이 길때 간절히 바라는 것은 태양이다. 이때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는 것은 신성하다.
사찰은 통일신라 때부터 산으로 들어갔다. 산의 신성을 중시했고, 그곳에서 신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람 배치와 경관 지리의 고저 등을 감안하면 태양과 물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있었다. 특히 계단이나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길게 연결되는 점층적인 성화개념이 반영됐다. 큰 사찰이 들어서는 입지조건의 핵심이 물, 산, 바람이라면 울산지방에서는 가장 일찍 뜨는 신선하고 장엄한 태양에 대한 관점이 덧붙여졌다.

정족산의 경우 물이 훨씬 풍부한 반대쪽을 버리고 동쪽을 택한 것은 경주 석굴암과 문무대왕수중릉 그리고 대종천의 관계는 1980년대 KBS방송팀에 의해 조사된 바 있다. 그 역시 117도와 비슷한 각도를 유지한 것이라는 관찰이었다.
석굴암 본존불의 좌대 방향은 방위각 117도(정동에서 남쪽으로 27도 방향)라고 하고 본존불은 좌대를 기준으로 동에서 남으로 4도가 틀어져 있다고 한다. 즉, 현재 본존불은 방위각 121도로 돼 있다. 이것은 일제가 수리공사를 할 때 본존불을 들어올리다가 잘못해서 그 방향이 틀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경주의 일출 방위각을 보면 동지 때는 119도이다.

한국천문연구원 2009년 12월22일이 동지이며, 일출시각은 7시29분이다, 이때 방위각은 117도이다. 울산도 거의 같다.
이들 사찰이 있는 지점의 모암은 모두 화강암이다. 물이 맑고 풍부하다. 또 계곡을 건너거나 긴 계곡을 따라 들어가도록 만들어 속과 성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 것도 특징이다. 동해의 당겨열림 현상과 관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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