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 그윽한 절 찾아 가는길 바위마다 재밌는 사연 가득
솔향 그윽한 절 찾아 가는길 바위마다 재밌는 사연 가득
  • 권승혁 기자
  • 승인 2010.01.28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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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지나 동축사 가는 좁은길

움푹하게 파여 겨울에도 ‘포근’

어른키 3배 높이 바위도 곳곳에

“‘절재’ 오르는 재미에 딴 데 이사를 못간다.”

울산 동구 남목초등학교 서북쪽 마골산 자락에 맞닿은 남장사를 지나 동축사로 가는 오솔길, ‘절재’에서 생겨난 말이다.

절재는 ‘절을 찾아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기괴한 모양의 바위와 솔향, 탁트인 푸른 바다가 찾는 이를 즐겁게 한다. ‘솔두배기’ 또는 ‘수릿재(鷲嶺)’라고도 한다. ‘솔두배기’는 좁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솔다’에서 유래됐다.

이 길은 예전에 동구 주민들이 울산 시내로 질러가는 길이기도 했다. 가파른 감이 있던 길은 지난해 폐목 등으로 계단을 갖추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절재’는 겨울철 산행 장소로 유명하다. 길이 움푹하게 파여있어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볕을 받아 포근하다.

게다가 곳곳에 사연을 간직한 바위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느린 걸음으로 30분쯤 올랐을까. 어른키 높이의 3배 정도 되는 바위가 좌우에서 불쑥 불쑥 나타난다. 대체로 둥그스름하면서도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모양이다.

절재 중간 쯤 보이는 ‘작은 두꺼방(작은 두꺼비 바위)’은 두꺼비가 산 정상을 보면서 앉아있는 모습이다. 남목은 동구에서는 잘사는 축에 속하는 곳이다. ‘작은 두꺼방’의 한쪽 귀퉁이가 남목을 향하고 있는 덕분이라는 속설이 있다.

길을 오르는 내내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족적암과 투구바위에서는 임진왜란 때 바람의 힘을 빌어 왜구를 물리쳤다는 동구의 의장 서인충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족적암은 3m 정도 떨어진 두 개의 바위에 각각 어른 팔뚝보다 조금 큰 홈이 파여있다. 왼쪽 바위의 홈은 장군의 왼쪽 발자국이, 오른쪽은 장군의 오른쪽 발자국이 남은 것이라고 한다.

이 족적암에 서면 두 개의 바위 사이로 서인충 장군 묘가 내려다 보인다. 족적암 아래에는 4~5m 높이의 투구바위가 있다. 이 바위 위쪽에도 홈이 있다. 장군이 오줌을 누면서 만든 흔적이라고 한다.

좁은 길이 끝나고 평평해진다. 솔 향이 코를 자극한다. ‘북만디’다. 이곳을 지나 고개를 한 차례 더 오르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천년고찰 동축사가 나온다.



남목3동 자연보호협의회 고문 김준부씨

땔감 구해 팔던 생활로

동축사 찾아가던 신앙로

“어머니가 ‘재’너머 ‘절’에 다녀오시던 날은 자식들 속옷에 무탈을 기원하는 부적을 숨겨놓곤 했지요. 며 칠 뒤에 그 사실을 알고는 친구들끼리 이리저리 속옷을 바꿔보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웃음)”

울산시 동구 남목동에서 여러대째 살고 있는 김준부씨(68·사진)에게 동축사로 가는 길(절재)은 어린 시절 추억과의 연결고리다.

김씨는 “지금은 남장사에서 솔두배기(절재의 다른 이름)가 시작되지만 수십년전만 해도 이 일대 대형 아파트 단지가 전부 완만한 산길이었습니다. 길 입구에는 마을 제당도 있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축사에 안치시켰지요. 숲이 울창해진 것을 빼고는 (길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추억담이 이어졌다. “공업화 이전에는 다들 이 길을 오가며 땔감을 구해 방어진에 내다팔았습니다. 아버지들은 지게마다 솔잎과 갈퀴, 나무를 한 무더기 얹어두고는 길가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과 미나리 한 젓가락으로 허기를 달래곤 했지요.”

특히 ‘절재’는 주민들에게 ‘생활로’이자 ‘신앙로’였다고 했다. “어른들은 집안에 길흉사가 있을 때마다 재를 넘어 동축사를 찾았습니다. 간혹 절간을 고쳐야겠다는 스님들의 혼잣말이라도 들릴라치면 주민들이 너도나도 절 살림을 도왔습니다. 스님들에게서 좋은 글귀라도 한 장 받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지요.”

김씨는 요즘들어 숲에서 사라져가는 ‘길동무’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십여년전만 해도 길 중간 중간마다 노란 토종다람쥐가 쪼르르 내달음 치던 모습을 자주 봤는데 이젠 통 볼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청솔모가 다람쥐 새끼며 개구리, 새 알까지 다 잡아먹어서 소중한 고유종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김씨의 탄식이다.

현재 동구 남목3동 자연보호협의회 고문인 그는 이 길을 다니며 산불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쓰레기 줍기에도 나서는 등 자연보호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예전처럼 장구 소리도 들리고 다 함께 달불놀이도 하던 옛 길이 그립습니다.” 김씨의 작은 바람이다. / 권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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