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관료들이 울산에 남긴 것
중앙관료들이 울산에 남긴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1.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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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앙정부 공직자 몇 명이 던진 말 때문에 울산이 시끄럽다. 과연 그들 말 때문에 우리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해야 하는 건지 또 울산지역사회가 설왕설래(說往說來)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가늠이 안 선다. 또 이들의 말이 정확한 판단과 분석에 의해 나온 것인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의 대(對) 지방 의식 구조도 알고 싶다.

우선 교과부 차관이 지난 달 20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협조를 얻어 조례를 고쳐서라도 전국 사설학원 야간교습 시간을 밤10시 이내로 단축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 말을 자세히 뜯어보면 교과부차관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협조라는 예의적 용어를 사용했지만 ‘조례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판단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건 그 각료의 권한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방교육 조례개정안을 제정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위원회나 시·도의회이지 정부 각료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교과부가 요청하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지방 실정에 맞게 조례를 개정할 수 있는 곳은 지방자치 기관들이다. 그런데 교과부가 마치 조례개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듯 한 발언을 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교과부 차관의 한 마디에 울산시교육청이 부산을 떨고 있는 모습도 보기 민망하다. 지금 울산시교육청은 교과부의 요청대로 ‘울산광역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 교섭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서울이야 이미 중·고교의 야간 자습시간을 오후8시로 변경해 놨기 때문에 학원교습시간을 10시로 제한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울산은 아직 ‘야자시간’을 10시 그대로 시행 중 인데 학원교습시간을 10시로 제한하면 그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어떻게 처리할지 걱정스럽다. 이 모두가 중앙정부의 일방적 행정 독주로 빚어지는 혼란인 셈이다.

최근 울산 항만공사를 통폐합 하라고 국토부에 권고한 감사원도 탁상행정 공론만 무책임하게 늘어 놓고 갔다. 인적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전국 규모의 공기업과 지역 단위 규모 항만공사를 수평적으로 비교하고 일방적 결론을 내렸다. 3만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철도공사나 6천8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토지주택공사를 정원 45명의 울산 항만공사와 평면적으로 비교해 울산항만공사의 임원비율이 24배나 높으니 ‘없애는 게 낫겠다’고 정부에 건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울산항이 동북아 오일 허브기지가 구축되기로 확정됐다든지 환동해경제권 중심항으로 부상 할 것이란 여타 조건은 무시한 채 ‘산술적 계산을 해 보니 없애는 게 낫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후에 발생한다. 일단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실은 그 과정의 하자여부와 상관없이 일반인들에게 그대로 인식돼 울산항만공사는 불필요한 존재로 인정되고 마는 것이 문제다. 또 이들의 발표와 보고에 접하는 중앙정부 관계자들도 지방의 현실보다 서류상에 기재된 사실을 더 신뢰한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지역 항만업계와 상공계가 감사원 발표에 격앙해 반발하고 있지만 중앙 정부의 각료들은 별로 반응이 없다. 간단히 말하면 지역에서 나오는 반발 정도는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났던 울산 상공계 고위 인사가 한 말이 기억난다. “울산에서 수십 명이 건의하고 심지어 지역 정치권까지 부탁한 지역 현안이 중앙부처 담당국장 책상위에 다른 서류들과 함께 뒤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국가정책이 운용되면 지방자치는 요원하다.

귀찮고 성가신 일은 지방에 넘기고 핵심사항만 중앙정부가 챙겨 가는 게 지방자치인가. 울산은 최근 사태를 통해 지방이 얼마나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는가를 뼈아프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 정종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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