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정치와 정치물새
물새정치와 정치물새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0.01.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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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목 뜸부기과의 ‘물닭’인지 기러기목 오리과의 ‘비오리’인지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녀석들이 태화강이나 회야강에서도 이따금씩 볼 수 있는 물새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여섯 마리의 몸집 자그마한 물새 일가족이 물속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일렬종대로 헤엄치는 모습은 우리에게 한없이 포근한 정서를 선사한다. 행여 놓칠세라 어미물새의 꽁무니를 쪼르르 따라붙는 새끼물새들의 고 앙증스러운 모습은 한 폭의 빼어난 수채화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연상되는 장면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물새 가족들이 안겨주는 수채화풍의 서정성을 정치판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눈을 닦고 보아도 없는, 바로 그 점이 판이하게 다르다. 어미물새와 새끼물새들을 정치적 좌장과 그 추종그룹으로 대치시켜 보면 이해가 빠를까? 정치물새 떼의 유영 장면은 새해를 여는 1월의 ‘신년’ 자 붙는 몇몇 행사에서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좌장과 추종그룹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공천장’이다. 눈도장이라도 찍어두자 하고 아까운 시간 축내 가며 성지 순례하듯 재경향우회를 찾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공천이란 ‘정치적 밥줄’을 한사코 놓치지 않겠다는 인지상정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그런 일이 몸에 배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탓일까. 다선 경력 좌장의 목에는 저도 몰래 힘이 들어가고 걸음걸이는 뒷짐 쥔 사장님을 빼닮는다. 보이지만 않을 뿐 그의 팔에는 금빛 도금 ‘완장’이 금배지를 대신한다.

추종그룹에게 좌장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감님’이다. 시키지 않아도 제 알아서 ‘가방모치’가 되는 것은 기본이고, 밤늦은 전화라도 공항 도착 알리는 좌장 것이면 ‘버선발 여인’처럼 뛰쳐나가야 한다. 주종 관계는 추종그룹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작성하는 자필 계약서의 노른자위다. 어떤 지망생은 좌장의 부인을 영부인처럼 받들어 모시며 ‘그림자 수행’을 즐기노라, 자가발전도 서슴지 않는다.

직설화법을 구사하자면, 좌장은 현역 국회의원을 말함이요, 추종그룹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자리를 열망하는 현역 또는 지망생을 일컫는다. 물론 모두 다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추종그룹과의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설정한 어느 좌장도 있기에 하는 이야기다.

‘정치물새’들에 의한 ‘물새정치’ 현상은 야당이라고 예외일 수 없지만 그 정도는 여당일수록 더욱 심하다. 출신 성분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야당은 소위 민주주의, 양성평등, 정치이념을 우선순위에 놓다 보니 손가락질이 두려워서라도 ‘물새정치’에 애써 눈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당은 태생적으로 줄서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 올가미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지연과 학연이 선택 아닌 필수가 되는 정치판에서 ‘연줄’은 정치생명을 건져 주는 동아줄이다. 딱 부러진 연줄이 없다면 다른 연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정치물새와 물새정치는 그런 간절한 염원 때문에 습지의 이끼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천 기준을 묻는 물음에 한 좌장은 이렇게 답했다.

“조직에 대한 기여도지요.”

조직에 대한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면 ‘조직의 쓴맛’을 볼 수도 있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어느 호사가가 이런 말로 받았다.

“그거야 중앙당이나 시당 말고 좌장 본인을 의미할 수도 있지요.”

정치판에서 ‘조직’이란 그물의 본질은 ‘기여’와 직결된다는 메시지로도 들렸다. 선거관리 당국이 귀에 못 박히듯 강조하는 ‘깨끗한 공명선거’와는 거리가 있는 메시지일 수도 있었다.

정치물새와 물새정치! 말뚝만 박아도 당선은 보증수표이고, 좌장한테 수하 노릇 잘만 하면 4년은 목에 힘 줄 수 있는 정치풍토, 그리하여 물갈이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는 이 정치풍토를 태화강의 물새는 알고 있을까?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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