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의(政治道義)’라는 것
‘정치도의(政治道義)’라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1.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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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12일 공격적인 표현으로 회심의 일격을 날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3년 반 넘게 한 솥밥을 먹어 왔으면서도 말을 갈아타겠다는 같은 당 비례대표 출신 이현숙 시의원에 대한 서운함은 정치적 공격으로 나타났다. ‘논평’은 한 여성정치인의 정치생명을 끊을 수도 있는 비수를 품고 있었다.

이날 당의 논평 기법은 직설화법이었다.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황당하기 그지없는’이란 원색적인 표현까지 구사됐다. 끄트머리에는 ‘철새 정치인들의 전철’이란 귀에 익은 어휘도 섞였고, 결코 출마해선 안 될 것이라는 으름장이 딸리기도 했다.

‘회심’은 사전상의 의미로 ‘마음 흐뭇한’(會心) ‘기분 좋은’으로 풀이할 수 있다. 조금 다르게 ‘마음에 품었던’(懷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잔뜩 벼르던 참에 기회가 와서 작심한 듯 한 방 날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현숙 시의원 타당 출마설에 부쳐’란 논평을 언뜻 보면 이 의원이 정치도의를 저버린 정도가 대단히 심각하다. ‘당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타당 출마설을 심심찮게 언론에 흘리고 있다’고 했다. 논평은 ‘탈당할 생각이라면 이번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는 게 정치도의’라고 못을 박았다.

찬찬히 살펴보면 이 의원에게는 ‘괘씸죄’가 적용됐다. 당의 예비후보가 내정된 마당에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는’ 결과가 올 수 있으니 출마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메시지도 담았다.

논평은 뒷부분에서 이렇게 이어진다. “누가 봐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4년 임기를 마치자마자 타당으로 말을 바꿔 타고 출마하는 것은 당을 우롱하는 처사이자,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할 말을 당연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대목에서 논란거리도 동시에 제공했다. “당에서는 본인이 민주노동당 의원직 유지를 희망했기 때문에 그 뜻을 존중하기로 하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대목이다. 이현숙 의원 측근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와 당의 논평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의원이 일찍이 당을 떠났다면 비례대표 예비후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했다. 하지만 갈등이 불거진 시점에 그 예비후보는 이미 탈당한 상태였고, 이 의원이 당을 버리면 민주노동당은 광역의원 한 자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그런 상황에서 당과 이 의원 사이에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의회사무처에 의하면, 이 의원의 당 잔류는 결과적으로 ‘시의원 4석 유지’라는 실익으로 돌아왔고, 부의장과 상임위 부위원장 배출이라는 덤까지 안게 됐다. 밀월관계 때의 이야기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풀뿌리의정포럼’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사건이 이들 관계를 오월동주(吳越同舟)처로 만들었을까? 지역 정가에서는 갈등의 불씨가 지난해 4월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지펴진 것으로 풀이한다. 조승수(진보신당), 김창현(민주노동당) 두 거물급 후보 간의 대결구도는 조 후보의 부인 이현숙 의원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무렵 본인의 의향으로 탈당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뻔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는 게 주변의 정설이다.

이러한 인식을 공유한 사람들 가운데는 12일자 논평을 두고 ‘몽니를 부렸다’거나 ‘딴죽(딴지)을 걸었다’거나 ‘막말 수준’이라고 꼬집는 이도 없지 않다. 그만큼 반향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치도의(政治道義)’에 대한 뜻풀이는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규범·금도·덕목’ 정도로 풀이할 수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도의’란 ‘상호신뢰’와 ‘상호존중’과 ‘진정성’을 전제로 한다. 어찌 보면, 정치도의란 눈앞의 작은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을 때라야 볼 수 있는 투명한 보석과도 같다.

강기갑 대표가 최근 제안했듯이, 민주노동당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 성향의 제 정당, 특히 진보신당과의 ‘통합 악수’ 실현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12일자 울산시당의 논평이 중앙당의 ‘큰 뜻’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정치적 도의’에 대한 강조가 자칫 ‘정치적 앙금’으로 둔갑해 진보진영이 지방선거에서 적전분열 양상을 재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진보 양당 울산시당 지도부의 지혜에 거는 기대가 큰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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