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랑이
한국호랑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1.1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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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食人) 호랑이로, 등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왕대(王大)란 글자 무늬를 지니고 밀림에 군림하고 있는 왕(호랑이)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발전에 따라 차츰 인간추격을 받게 되자 왕은 더욱 광포해진다. 왕을 경애하고 왕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던 늙은 사냥꾼 퉁리는 자신을 바쳐서 왕을 진정시키려고 하였으나, 그보다 앞서 왕은 처자를 구하려다 다른 사냥꾼의 총탄에 쓰러진다. 갈수록 줄어드는 먹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 수 밖에 없었으나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상은 세계 동물문학 걸작 가운데 하나인 ‘위대한 왕’의 줄거리이다.

1872년, 현(現)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키예프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바이코프가 쓴 ‘위대한 왕’은 자랑스런 백두산호랑이의 생애를 그린 소설이다. 1936년 발표된 이 작품은 중국 동북부의 광대한 밀림이 무대인데, 만주에서의 체험과 완성도 높은 구성이 어우러진 뛰어난 동물문학으로서 호평을 받았다.

바이코프는 삼십여 년을 만주의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여러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은 만주 밀림의 동식물과 원주민 생활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그 가운데 ‘위대한 왕’은 우연한 기회에 백두산호랑이 새끼를 기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인간과의 감동적인 교류를 엮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외국인 작가가 한국호랑이를 소재로 쓴 소설이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호랑이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바이코프는 ‘시베리아호랑이는 야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백두산호랑이는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심지(心地)와 정(情)이 있다’고 했다.

호랑이는 사신(四神, 청룡·백호·주작·현무) 가운데 유일한 실제 동물이다. 특히 속담·민담·민화를 비롯하여 문학작품에까지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영물로 여기며 숭배해 왔는데 산신령 또는 산군으로 받들었다.

특히 한국호랑이는 용맹하기로 손꼽혔다. 19세기 중엽 러시아와 만주지역의 사냥꾼들은 호랑이를 가장 두려워했다. 한국호랑이는 중국 동북부 지역의 동북호랑이와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시베리아호랑이와 같은 종인데 몸집은 조금 작아도 셋 중에서 가장 무서웠다고 한다. 한국호랑이의 털은 동북호랑이처럼 길고 두터웠으며 몸의 빛깔은 붉은색을 띠고 등에는 불규칙하게 폭이 넓고 선명한 검은 줄무늬가 있으며 눈 부위와 뺨, 몸의 아랫면은 순백색이었다. 꼬리는 허리와 같은 색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엷은 누런색을 띠었다.

한국호랑이가 백두산호랑이로 유명한 것은 백두산 원시림에 가장 많기도 했으나, 단군신화의 장소가 태백산이었기 때문이다. 태백산은 지금은 경북 봉화, 강원 삼척에도 있지만 원래는 백두산의 옛 이름이다.

학계에 따르면 한국호랑이는 1924년을 마지막으로 한반도 산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고됐다. 도로교통의 발달 등이 생태계 변화를 가져온 탓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깝기도 했던 한국호랑이는 이제 몇몇 동물원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뿐, 야생에서는 볼 수 없는 전설의 동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호랑이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큰 짐승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야생호랑이의 생존 여부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호랑이보호협회 임순남 소장은 세간의 외면에도 아랑곳 않고 한국호랑이를 찾겠다며 16년의 세월을 바치고 있다. 임 소장은, 1996년 환경부가 더 이상 한국에는 야생호랑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정확한 현장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멸종을 얘기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한국호랑이 고유의 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인년(庚寅年)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 친근한 존재로 자리매김해 온 한국호랑이는 정말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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