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 연꽃지에 깨어나는 3월
선암 연꽃지에 깨어나는 3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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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만큼 비켜 서 있는 듯 하더니 성큼 다가와서 어느 새 스쳐 가 버렸다.

기다림에 만나고, 기뻐서 아쉬움이 많은 달-2월이 끝자락에 섰다.

월초엔 설날이 있어 마음이 바빴었다. “명절 없으면 좋겠다”는 투덜거림도 나지막한 고향집에 들어서면 헛말이 돼버렸다. 따뜻한 아랫목엔 더 오래 있고 싶고 살얼음 옅게 낀 식혜는 마음을 맑게 했다.

만나면 헤어지는 법. 섭섭하고 아쉬운 정은 명절마다 느끼는 부모 마음이리라.

소시민들은 빡빡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10일 밤엔 국보 1호가 불타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간임에 즐거웠던 명절은 연휴 마지막 날 허무로 끝났다.

사정없이 덤벼드는 시간 앞에선 무능한 한 개 개체에 불과함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좌절했을 것이다. 소방차 50대가 동원되고 150명의 소방관이 뛰어 들었지만 ‘인간의 한번 실수’는 영원한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가 됐음이 부끄러웠던 날이 지난 12일 이다.

우리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은 선명하다. 쌍꺼풀 수술 흔적도 없고 매끄럽고 고운 피부도 아니었지만 또렷한 것이 하나 있다. 짙은 ‘어머니 냄새’다.

입안에 먹고 있던 것마저도 꺼내 자식에게 먹이는 모정은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18일 부터는 시내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이 시작됐다.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찢긴 교복을 입은 채 거리를 다니면서도 마냥 낄낄대는 모습은 철부지들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학교 다니느라 고생 많았다’ 싶어 한번 웃어준 것이 오히려 그들을 용기백배 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세월이 지나 돌이켜 봤을 때 그 시절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성인이 돼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21일은 정월 대보름이었다. 그날 밤 뜨는 달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 것은 마음의 여유 때문일 게다. 19일 우수도 지났고 큰 추위도 더 이상 없을 테니 ‘열심히 사는 일’만 남았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란 얘기다.

23일 찾아 간 선암 수변공원 산책로에는 봄기운이 깔려 있었다.

아직 바람은 차고 햇살도 멀리 있었지만 소나무 쉼터를 거쳐 선암 연꽃지로 걷는 시민들의 몸 짓 속에 3월이 깨어났다.

본보 주최 선암수변공원 시민 걷기 대회에 참가한 수천 명의 사람들은 2월이 짧음을 알고 춘 삼월을 미리 찾는 계절의 전령사 인가?

돌이켜 보면 무자년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2월은 저 만큼 발치로 밀려나 있다.

유난히 인간의 감성에 많은 흔적을 남겼던 시간들이 마지막 줄에 서있다는 느낌은 허무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아주 작은 점들이 알알이 모여 순간을 만들고 순간이 이어져 시간이 된다면 우리는 한 달 동안 길게 살았던 셈이다.

오늘 대통령 취임식이 있다.

‘오늘’이란 시간도 내일에서 바라보면 지난 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작은 점들이 연결 돼 3월로 넘어가면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재가 길 것이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거듭하면서 살아간다.

내년 2월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무엇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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