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굴뚝만 있다?
울산에는 굴뚝만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2.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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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관광지도에 서울, 부산, 경주는 있는데 울산은 안 보입디다. 다행히 현대자동차는 알고 있어도 울산이 어디에 붙어 있는 줄은 전혀 모르대요.”

싱가포르를 다녀왔다는 울산시청 공무원 A씨의 후일담은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졌다. ‘말로만 국제도시’ ‘말로만 관광도시’에 대한 뼈아픈 자성 같기도 했다.

미완의 대작 ‘2009 세계옹기문화 엑스포’도 따지고 보면 국제도시화, 관광도시화를 겨냥한 사전포석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국제도시, 관광도시는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요 구호용일 뿐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울산교육청 B장학사는 얼마 전 대구 손님 몇 분 맞을 준비를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울산에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마땅한 숙박시설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고급호텔로 모시자니 숙박료가 장난이 아니고, 모텔에 모시자니 이미지가 그렇고, 비용 저렴하다는 유스호스텔은 눈 씻고 봐도 없더라는 것. 고심 끝에 그는 2차 회동 장소를 경주 교육문화회관으로 정하고 말았다.

수필문학 모임의 C회장은 2년 전 가을 영호남 8개 시·도의 동호인 100여명이 자리를 같이하는 연례행사를 앞두고 비슷한 고민으로 날밤을 세웠다. 행사와 숙식을 동시에 해결할 장소가 문제였다. 끝내 행사는 문화예술회관 쉼터에서 치렀고, 잠잘 곳은 한참이나 먼 신명의 교육수련원으로 잡아야 했다.

이런 사실을 공무원들은 알고나 있을까? 대답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였다. 시정기획 부서 고위간부 D씨는 업무와 휴양을 겸하고 회의장과 전시장의 기능도 갖춘 컨벤션센터의 개념을 떠올렸다.

“사전 검토를 안 해 본 게 아니라 수요조사까지 충분히 해봤지요. 하지만 득실 면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냉철한 판단 하에 접을 수밖에 없었지요.”

‘냉철한 판단’이란 밑지는 사업에 애써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라 연간 200억~500억원이나 되는 운영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 못한다는 결론이었다.

“정 필요하면 1시간 거리의 부산 벡스코나 경주 교육문화회관을 이용하라 하지요” 그의 맺음말이었다.

울산시는 5년 전쯤 IWC(국제포경회의)를, 남구청은 올해 세계양궁대회를 유치한 저력이 있다. 당시 IWC 관계자들의 숙소는 롯데호텔이었지만 세계양궁대회 관계자와 선수단의 숙소는 모텔까지 포함됐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을 이 두 국제행사의 공통점은 ‘단발성’이었다.

울산시의 관광담당 부서 실무책임자의 이야기도 들어 봤다.

“세계 양궁대회를 지켜보니 각국 선수단 숙소가 모텔입디다. 등억온천 지구에도 모텔들이 많고…” 고급호텔 찾을 것 없이 여차하면 모텔이나 이용하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는 울산시내 8개 관광호텔은 시설이 낡아 모텔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단체관광객, 특히 600명이 넘는 외지 수학여행단은 ‘수용 불가’로 골칫거리라는 점도 시인했다. 그러나 고민을 뛰어넘는 창의적 의지를 기대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는 오로지 3조원이 들어가고 콘도가 생기고 대규모 컨벤션 시설도 갖추어진다는 강동권 개발에 기대의 끈을 매고 있었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관광산업. 하기에 따라서는 부가가치가 엄청난 관광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벌써 수십 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 시정당국자의 귀에는 경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낱 ‘흘러간 물레방아쯤’으로 비쳐지는 것일까? 관광업계의 E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관광 인프라 사업에는 당장 돈이 들어가고, 컨벤션 시설이라도 갖추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이 어디 있나? 울산12경과 적지 않은 문화유산, 풍부한 산업관광의 요소들을 제발 말로만 자랑하지 말았으면 한다.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머물다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길게 보면 급선무 아닌가?”

“경주나 부산으로 빼앗기는 국제회의 손님, 국내외 관광객들을 며칠이고 울산에 붙잡아 둘 수 있도록 생각부터 바꾸자.

‘원스톱 서비스’란 용어를 보고 즐길거리, 먹을거리, 쉴 곳과 잠자리를 울산 경계선 안에서 해결하는 데도 적용하자. ‘굴뚝’만 있고 ‘굴뚝 없는 산업’은 안중에도 없는 울산이 되지 않게 지혜를 모으자.”

필자도 새해 소망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새해에는 단체장의 마인드부터 바뀌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작지만 말쑥하고, 풍부하지만 저렴한 숙박시설을 확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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