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 이고 울산장 넘나들던 발길 흔적만
곡식 이고 울산장 넘나들던 발길 흔적만
  • 염시명 기자
  • 승인 2009.12.10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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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곡동 예수 바윗길
울산 중구 원유곡동 혁신도시예정지구는 하루에도 수십여대의 대형트럭이 드나들며 분주한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을 따라 조금만 산으로 들어가면 이미 오랜시간 자연과 소박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놓은 옛길이 나타난다. 이 길의 이름은 ‘예수 바윗길’이다.

원유곡 마을은 1786년 정조 10년 유골이라 일컬어지던 마을이 1914년 고종 때가 유곡으로 바뀌었던 지역이다.

이 마을 입구에는 골짜기로 올라가는 두 갈래 길이 나눠져 있다. 좌측 길은 옛날 큰 절이 골짜기 가운데 세워져 있다고 해서 ‘절터골’이라고 불리던 골짜기가 있었다.

이 골짜기 길은 과거 울주군 범서읍 사서리 사람들이 울산시내 최대 5일장인 울산장에 물건을 팔고 사기 위해 넘나들던 길이다.

현재는 폭 3m 시멘트 길이 나있고 그 옆으론 매실나무 등 과일나무들이 즐비하게 심어진 채 절터 인근까지 이어져 있다.

옛 절터 뒤편으로는 ‘절터골’을 지나 서사리로 넘어가는 작은 소로만이 아직도 양쪽으로 대나무들을 거느린채 흔적을 남기고 있다.

50여년 전만해도 울산장을 통해 생필품을 얻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새벽부터 곡식과 채소들을 등과 머리에 이고 지고 줄지어 다녔지만 이제는 간간히 산을 찾는 등산객들 만이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

원유곡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절터골’에서 동북으로 뻗은 골짜기는 ‘예수 바우골’이라 불렸다. 여우를 일컫는 예수라는 울산사투리에서 알 수 있듯 ‘예수 바우골’은 여우가 바위 위에서 자주 출몰했음을 말해 준다.

지금은 잡목이 우거져 설령 여우가 존재하더라도 쉽게 볼 수 없겠지만 나무와 낙엽을 주요 땔감으로 사용하던 60년대까지는 먼발치서 지나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쫓아왔던 여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길촌마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아스팔트 포장이 깨끗하게 된 이 도로를 걸어 오르며 행여나 여우가 발걸음을 따라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곳이 ‘예수 바우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여우를 찾아 걷는 길은 양쪽으로 10여m가 넘는 수십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내뿜는 솔향기가 산골길의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예수 바우골’ 길을 400m가량 걸으면 이동학을 창도했던 ‘수운 최제우 유허지’를 만나게 된다.

최제우는 외세의 침략과 봉건 사회의 모순에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의 교조로, 1905년 의암 손병희에 의해 창시된 천도교의 제1세 교주이다. 기록에 따르면 1824년에 경주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13세에 그의 아내 울산 박씨를 만나 21세에 울산으로 옮겨와 살았다.

그는 1854년에 ‘예수 바우골’에 초가집을 짓고 수도 했으며 이듬해인 을묘년에 금강산에서 내려온 선사로부터 천서를 받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문에 천도교에서 ‘예수 바우골’은 성지(聖地)로 알려졌으며 1997년에는 천도교에서 최제우 유허비를 세웠다.

우리나라의 4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계룡산처럼 이곳 ‘예수 바우골’도 최제우라는 걸출한 평민 영웅을 만들어 낸 곳이기에 앞으로 이곳을 찾을 많은 사람들 중 또다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볼 만도 하다.

아직도 아스라한 전설을 간직한채 신도시와 인접해 있는 ‘예수 바우골’로 이어지는 옛길을 다시금 걷고 싶어지게 한다.

/ 염시명 기자









마을 토박이인 차석희씨

“온동네 여우 우는소리 난리 우차조차 못다녔던 서민길”

“솔직히 어린 시절 여우를 한 번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 일부와 서사에서 장을 넘어 다니던 사람들 중에는 여우가 따라와 무서웠다거나 때때로 적막함을 달래줬다고 말해 정말 있다고 믿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원유곡마을을 떠나지 않으며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지어 제사를 모시고 있는 마을의 토박이 중 토박이인 차석희(63·사진)씨는 ‘예수 바우골’을 이같이 회고했다.

차씨는 “여우가 많다는 말에 친구들과 저는 최제우 유허지 인근에는 가보지도 못했다”며 “나중에 90년도쯤 돼서야 그곳에 최제우 유허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올 때면 항상 할머니께서 “내가 어릴 때는 비가 올 때쯤이면 온 동네에 여우 우는 소리로 난리가 났다. 하도 많이 울어대서 잠을 잘 수 없었거니와 집 마당까지 내려오는 통에 화장실을 가다 놀라 넘어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해 마을에 여우가 많았다는 것을 짐작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차씨는 예수 바우골 서쪽으로 있는 절터골 길은 70년대 말까지도 작은 소로만 나 있어 우마차조차도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서사마을 사람들이 지역에서 가장 큰 울산시장을 5일마다 한 번씩 가기 위해 오가거나 시내 사람들이 땔감을 얻기 위해 오르는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암자를 짓고 조상들의 제사를 모시는 차씨는 “과거에 이곳에 큰 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절터만 남아 있어 별로 믿지 못했는데 14년 전에 길 한 켠에 암자를 짓고 과수원을 가꾸다 보니 여러 스님들이 지나며 큰 절이 있었던 지역이니 절을 짓고 싶다고 땅을 팔라는 제의를 해왔다”며 “이곳에서 평민 영웅이라 불리는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고 큰 스님들이 이같은 제안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 마을의 기운이 남다르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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