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은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칙은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2.0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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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34대 대통령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원수(元帥)가 2차 대전 종료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 남긴 일화(逸話)다.

‘아이크’가 어느 날 집무실에 앉아 있는데 대학 행정관이 들어와 하소연을 늘어 놨다. “길이 아닌 곳으로 학생들이 다니는 바람에 잔디밭이 엉망이 됐습니다. 망가진 곳 마다 보수 작업도 하고 더 이상 지나다니지 못하게 울타리도 치지만 학생들이 여전히 울타리를 짓밟고 잔디밭으로 질러 다녀 교정이 또 엉망이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하자 아이젠하워 총장이 딱 한 마디 했다. “그들이 다니는 곳으로 길을 내 줘라”였다.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와 더불어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오성(五星)장군이다. 맥아더가 일본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아이젠하워는 유럽에서 독일군을 격파했다. 사실 2차 대전 중 유럽 쪽에선 맥아더보다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을 더 우위에 놓을 정도로 ‘아이크’는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인물이다. 그런 거물급 인사가 ‘망가진 잔디밭’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봤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아이크’는 항상 객관적 입장에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대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원칙을 고수하기보다 운용에 역점을 뒀던 폭 넓은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다. 2차 대전 말, 민주당 출신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세 번째 대통령자리를 내 준 미국 공화당 측이 똑 같은 원수(元帥)지만 맥아더보다 아이젠하워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망가진 잔디밭’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때문이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공화당 거물급 인사들과 충돌을 빚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공화당이 자신을 ‘선택’해 줬음을 잊지 않았고 스스로 정치 신인임을 깊이 인식해 유연한 원칙을 구사했기 때문에 쟁쟁한 원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연임에 성공했던 것이다.

최근 울주군이 간절곶 해맞이 공원부지 내에서 영업하던 카페들을 철거키 위해 철거반을 출동시켰지만 업주들이 미리 시설물을 옮겨버려 허탕치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과 7월에도 이 카페 촌을 철거하려 했지만 계고장을 통해 행정대집행 날짜를 알고 있던 업주들이 미리 피해버려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단속 과 원상복구’란 악순환이 거듭돼 온 셈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군(郡) 관계자는 “내년부터 불법가설물을 운영하는 업주들을 관련법규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간절곶을 찾은 관광객 수는 134만 여명이다. 그러나 그곳에 가 보면 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앉을 곳이 없다. 구태여 찾는다면 희망 우체통 앞 바위나 도로 후면에 있는 잔디밭이 전부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바람이라도 피하려면 간절곶 뒤 언덕위에 있는 개인소유 음식점이나 공공 화장실 옆 소규모 휴게소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또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음식점은 가격이 시중에 비해 턱없이 비싸고 휴게소 내 휴식 공간은 비좁기 그지없다. 그래서 대부분 관광객들은 추위를 피해 승용차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린다. 그나마 싼 값에 음식물을 먹으면서 이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카페들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제의 불법 판매시설들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 난 것이다. 카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쉴 곳이 없기 때문에 그 틈을 비집고 카페가 들어섰으며 우리가 그 곳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잔디밭을 짓밟고 가로질러 건너가는 학생들을 위해 샛길을 내 주듯이 우리가 필요해 찾아가는 곳에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시설을 절대 설치 할 수 없노라고 버팅기지만 말고 말이다. 언제 마무리 될지도 모르는 공원조성 공사를 두고 관광객들에게 ‘그때까지 앉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먹지도 말고 잠시 둘러만 보고 가라’면 그 누가 이를 수긍하겠는가. 간절곶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원칙을 완용해서라도 적절한 휴식공간을 마련치 않으면 ‘간절곶 술래잡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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