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농성천막
시청 앞 농성천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2.0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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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아침 따끈한 시간대에 한 지역 TV방송사가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뉴스 하나를 내보냈다. ‘예선노조 삭발단식 보름째…애타는 가족’이란 제목으로. 울산예선지회(=울산예선노조)의 파업 124일째, 지도부 삭발단식 15일째, 민주노총울산본부장 단식농성 1일째인 8일에 취재한 기획보도였다.

<앵커멘트> 다섯 달째로 접어든 예선노조 파업사태. 선장들의 삭발 단식농성에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선장들과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소금과 물에 의지한 지 벌써 보름. 나흘째부터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는 지회장은 조합원들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인터뷰> 윤찬관/전국운수노조 항만예선지부 울산지회장=”형편도 어려운데 믿고 따라오니까 안타깝죠.”

수입 끊긴 지 넉 달째, 근근이 대출로 산다는 아내들의 사연은 구구절절 가슴이 저밉니다.

<인터뷰> 김수경/송철갑 기관사 아내=”고1 딸, 하고 싶은 거 못해 주는 게 가장 가슴이 아프죠.”

<인터뷰> 이경심/김용남 항해사 아내=”학원 다 끊고, 늦둥이 기저귀, 예방접종비도 없어요.”

‘선장은 노동자에 해당한다. 선사는 노조를 인정하고 교섭에 임하라’는 법원의 잇따른 판결에도 정부도 선사도 눈을 감고 있습니다. 파업농성 124일째, 추위와 배고픔보다 시민들의 무관심이 이들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습니다.

울산시청 남문 앞 인도. 용케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전보다 더 넓어졌다. 농성용 천막 치기에는 그저 그만. 그러다 보니 여러 단체에서 자기주장을 오래 외치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당국이 허가할 리 없으니 늘 ‘불법’ 딱지가 붙어 다닌다.

예선노조 관련 농성천막이 셋으로 늘어난 이날 점심나절, 시청네거리에서 제일 가까운 천막 안. ‘전국운수산업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사무국장’ 김흥식씨가 명함을 내민다. 조금은 길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이 단식농성의 날수를 짐작케 한다.

“단식 16일차인데 물과 소금과 야채효소로만 때우죠. 저하고 윤 지회장, 둘이서 말입니다.”

답변이 이어졌다. 방재업체인 H환경의 15명을 합치면 울산지역 ‘예선노동자’ 수는 150명 남짓. 대부분은 사용자인 J선박, S종합, T선박과 고용관계에 있고, 예선노조 조합원은 120명에서 100명 선으로 줄었다. 파업이 넉 달을 넘기면서 ‘예선가족’들은 생계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TV 뉴스는 그런 사실을 부각시키려고 애쓴 흔적이기도 했다.

월급 수준이 공개됐다. 15~16년차 기관장이 200만원 조금 넘고, 허드렛일(급식, 밧줄 잡이) 일꾼은 120만원 선이지만 4대 보험료 제하고 떨어지는 돈은 100만원 정도. 32년 경력의 선장은 월 400~500만원, 연봉 4천800만원 수준이지만 학자금 지원이 일절 없어 여태 전셋집 신세다. 자녀 둘을 대학 보내고 출가까지 시키자니 어쩌지도 못하는 선택이라했다.

“주 5일 근무, 월 209시간 노동은 엄두도 못 냅니다. 월 400시간 이상이 예사고, 육상사업장의 2배나 됩니다. 32년 선장이 현대자동차 연장근무 노동자보다 훨씬 못한 거죠.”

김씨에 따르면, 현재 울산지역 예선들의 빈자리는 다른 지역 예선 22척이 차지하고 있다. 부산, 마산은 물론 여수, 인천, 평택, 동해, 삼척에서도 원정을 나왔다. 울산항의 질서가 교란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예선노조의 주장은 실로 소박하다는 게 그의 주장.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고, 교섭을 근무로 인정하고, 노조사무실을 제공해 달라’는 것일 뿐인데도 사용자들은 귀를 막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도 임금은 3-4년째 동결했다는 주장도 담았다. 파업 전 예선노조원들은 위로금으로 특별상여금 50만원을 요구했다. 돌아온 답은 ‘50만원 못 준다’ ‘노조 인정 못한다’였다.

“노사 교섭이 20여 차례 있었지만 사용자는 교섭을 거부하거나 나와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교섭을 회피했습니다.”

관계당국에 대한 불신은 철저했다. 예선사업 관리감독기관인 울산지방해양항만청은 숫제 손을 놓은 채 직무를 유기하고, 노동부울산지청은 하는 척하면서도 책임 있게 나서는 법이 없다는 것.

오히려 사측에 동조하거나 측면 지원하는 느낌마저 든다고 했다.

“여수와는 너무 딴판입니다. 2년 전 노사문제가 터졌을 때 여수해양청은 노와 사를 열심히 오가며 중재에 나섰고, 결국 14일 만에 타결을 봤지 않습니까?”

김흥식 사무국장은 서류를 꺼내 보였다. 이날 오후 노동부울산지청에 접수시킬 고소장. 벌써 4번째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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