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스카이라인
울산의 스카이라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2.0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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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보이는, 산이나 건물 따위의 윤곽선.’ 스카이라인(skyline)의 사전적 의미다.

2009년의 마지막 달력에 그려진 울산의 스카이라인은 더 이상 곡선이 아니다. 땅따먹기에서 이기고 만 직선이 더 많은 영역을 자랑한다. 시야에 잡힌 윤곽선을 직선이 지배하면 사고방식도 직선적이 된다. 서정(緖情)의 자리는 그만큼 잠식당하고 만다.

12월 2일의 오후, 남구 신정동의 10층이 넘는 건물 옥상에서 사위를 조망한다. 가까운 남산의 스카이라인은 2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에 가로막히면서 부드러운 윤곽선에 생채기가 난다. 좀 더 먼 거리, 한때 울산의 주산(主山) 노릇을 했던 함월산의 스카라인 역시 수십 층짜리 주상복합건물군의 위세에 눌려 답답함을 호소한다. 산등성이를 까뭉갠 시멘트 건물 군상들도 가쁜 호흡의 주범들이다. 그 반대편 신선산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화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단정 짓기엔 아쉬움이 많다.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너무 미흡했다는 느낌이 앞선다. 혹자는 ‘도시다움’의 표상으로 고층건물의 존재를 내세운다. 부드러운 스카이라인은 울주군이나 도시의 변두리에서나 찾으라고 핀잔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는지! 불과 10년 안쪽에 갑작스레 진행된 현상들이지 싶다. 언젠가는 ‘모텔’ 바람이 돌림병처럼 몰아치더니 근자에는 ‘주상복합’의 지진해일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결과는?

몇 해 전 찾은 충북의 심장부 청주에서는 서른 개가 넘는 모텔들이 골칫거리로 둔갑해 있었다. 얼마 전 찾은 충남 천안에서도 모텔 밀집지역은 혐오지대로 간주되고 있었다. 울산이라고 해서 얼마나 다른가? 너도나도 달려들던 ‘주상복합’ 붐은 또 어떤가?

울산시의회의 마지막 행정사무감사 때도 그런 지적이 있었다. 속살을 들여다본 주상복합건물의 현주소는 비애를 느끼게 한다. 분양률은 높아야 70%선이고 10-20%선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5년 애물단지’라는 중구 우정동 코아빌딩의 재판을 우려하는 시민도 있다. 분노를 토하는 시민들은 마천루 흉내를 낸 이들 고층건물들이 울산시민들의 스카이라인 조망권마저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도심의 시민들이 시원스레 탁 트인 하늘을 구경하자면 병아리를 닮아야 한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는 생존본능에서 180도 각을 만들지만 사람은 정서적 욕구에서 그 비슷한 행위를 한다. 무질서하게 난립한 고층빌딩이 정서를 앗아가는 절도범인 셈이다.

최종보고회가 끝난 태화루의 전망 각도가 최근 복원추진위원들 사이에 논란거리가 됐다. 전하는 바로는, 태화루의 얼굴(앞면)을 태화강 하류 쪽으로 돌리자니 누각 건축의 상식에 맞지 않고, 태화호텔 쪽으로 돌리자니 흉물스러운 주상복합건물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낙착을 본 것이 십리대숲을 향하게 했다는 것. 결국 고층빌딩이 문제였다. 옛 사대부들의 시심(詩心)을 주변 환경이 망쳐 놓았다는 이야기다.

스무 해 전 말레이시아의 수도를 찾았을 당시 현지의 관광가이드가 들려준 귀띔은 쿠알라룸푸르의 도시적 아름다움과 함께 여태 판박이로 남아있다. 건물을 지을 때는 모양새나 색상 어느 하나 똑같지 않게 시당국이 건축법으로 규제한다는 전언이었다.

우리 울산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도시과’ 이름을 ‘도시디자인과’로 바꾼 울산 남구청이 2024년을 마감년도로 정한 도시경관계획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것. 울산대 산학협력단에 맡겨 내놓았다는 이 계획에는 ‘건축분야에도 가이드라인을 세워 도심에 통일성을 이루고, 건축물의 조명에서는 지나친 밝기나 원색을 피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뒤늦은 감이야 있지만, 울산시도 그런 점에 눈길을 돌리고 있어 그나마 고무적이다. 이효재 도시국장은 2일, 성냥갑 같은 건축물들이 양산되지 않게 높낮이와 색상에 변화가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다만 고층화 규제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스카이라인에 대한 가이드라인’. 울산시가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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