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있거든”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있거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1.1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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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론보도를 연이어 접하고 남의 일인데도 가슴 졸인 일이 있었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소식 때문이었다. 혹여 선의의 피해자라도 생기면 안 될텐데 하는 조바심이 생겼던 것이다.

11월 9일자 K신문은 관련 소식을 4,5면에 걸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정부가 못한 ‘친일 청산’…시민이 ‘성역’ 깼다’ ‘해방후 사회지도층 인사 대거 포함’이란 활자가 두 지면에 나란히 펼쳐졌다.

다음은 ‘설전’이란 제목의 사진설명.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서울 숙명여대 앞에서 8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회원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이날 대회는 결국 효창공원에서 개최됐다.” 사안의 민감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친일…사전’ 속에는 한 세대를 풍미하다 작고한 저명인사 다수의 이름이 올라 세인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두 거대언론사의 전직 사장을 비롯해 전 가톨릭 주교와 전 조계종 종무총장의 이름도 올랐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한때, 아니 오랫동안 필명을 날렸던 위암 장지연 선생도 옥고를 치른 후 일제에 정신적으로 부역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보다 며칠 전, 전직 대통령이 혈서를 써서 일본군 사관학교 입학을 자청한 사실이 당시 만주국의 신문에 실렸었다는 보도는 그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남달리 관심이 간 부분은 친일의 대열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짐작보다 더 많이 가담했다는 사실이었다. 화가 김기창, 소설가 김동인, 작곡가 안익태와 홍난파, 극작가 유치진, 무용가 최승희 등등. 그 속에는 숱한 후배 문인들의 흠모를 독차지했던 미당 서정주 시인도 끼어 있었다.

미당에 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1980년대 초의 일로 기억된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몸담았던 신문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직후의 일이었다. 부산 수영만 근처를 지나가던 아침 출근 시간대 버스 안의 라디오를 통해 들린 그 특유의 육성은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우리 전OO 대통령은 국조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영도자이십니다.”

그 뒤로는 그의 대표적 서정시 ‘국화 옆에서’를 더 이상 애송하는 일이 없어졌다. 당신 그릇의 한계가 아니냐고 누군가가 지적해 와도 집념 같은 고집은 여러 해 동안 꺾이지 않았다.

‘후손들 “일제 강압에 의한 것” 반발’ 제하의 9일자 K신문 5면의 끄트머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되자 이에 등재된 인사들의 후손과 관련 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일제시기 군인이나 관료로 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의 유족들과 기념사업회 등은 ‘일제 치하의 군대와 정부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이라고 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출판·저술·예술 활동으로 사전에 ‘친일 지식인’으로 이름을 올린 인사의 후손·관련단체들은 ‘친일 활동의 근거로 제시된 것들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강압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밖의 해명들도 마음을 흔들고 판단을 흐리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기고문은 대필이나 강압에 의한 것’(장지연 기념사업회), ‘천황모독죄로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친일 관련 글을 썼던 것’(김동인 유족)…….

그 후손이나 추종세력들의 해명 또는 항변에 인간적인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갔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반문해 온다면 잠시 멈칫할지도 모를 일이다.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있거든 이 여인을 돌로 치라.” 간음 혐의로 끌려나와 민중 재판에 붙여진 여인을 감싸기 위해 던진 예수의 말씀을 그들 중의 누군가가 감히 인용하더라도 대꾸할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어 보자. 조국의 광복을 위해 초개같이 몸을 던진 독립군들의 숭고한 호국 혼과 그 후손들의 가난과 비통함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몇 마디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찌하여 오늘날의 울산사람들이 그토록 박상진 의사를 기리고 칭송해 마지않는지를 잠시나마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은 역사적 진실의 한 단면이다. 공과 과를 다 함께 지닌 인사가 사전에 수록됐다면 그의 공은 아무리 컸더라도 그의 과에 의해 묻힐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잘못된 등재로 선의의 피해를 입는 사람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시에, 없었던 공을 있었던 것처럼 그릇되게 포장하는 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일본제국 군복과 일본도 차림의 사진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했다던 울산의 어느 저명인사의 부친이 어느 날 느닷없이 독립유공자로 둔갑했더라는 뜬소문도 결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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