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설화 발생근원 밝힐 바닷속 천길 절벽
처용설화 발생근원 밝힐 바닷속 천길 절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1.0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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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해무가 들이닥친 일산반도 대왕암 주변. 해저 2000m에서 솟구친 냉수괴와 따뜻한 물이 만나 자욱히 피어난 안개는 급속히 포구에 밀려와 흩어진다. <사진제공 동구청>

[개요]


울산 앞 바다는 무려 1,800m 가량 높낮이 차이가 나는 해저지형 주변부에 놓여있다. 울산에서 포항쪽으로 가면 해저에 한라산 높이 보다 더 높은 절벽이 있는 것이다.

동해의 평균수심이 2000m이고 울산 앞바다의 수심은 150m이다. 이 높낮이 때문에 해양심층수가 솟구치고 찬 물덩어리(냉수괴)가 갑자기 출현한다. 이 현상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런 현상이 있는 곳은 세계적인 어장이 형성된다. 냉수괴는 갑자기 짙은 안개를 피워올려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또 이 해역은 구로시오난류와 동한한류가 만나는 경계다.

이 경계에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게 생산돼 많은 어족이 몰리게 했다. 그 정점에 고래가 있다. 물산 풍부한 울산을 만든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답사기]

1800m 높낮이 차이나는 울산받 세계적 드문 해역

냉수괴 떠올려 짙은 안개 피우고 천혜의 어장 형성

양주동의 일식현상 해석은 지형몰라 생겨난 착오


처용설화의 안개에 대해 구구한 해석이 많지만 이 해저 지형을 이해하면 해석이 간단해진다.

몇해전 여름 오후 바다안개가 요술을 부리듯 회야강 하구로 밀려들었다. 이 광경은 서생포 왜성 가장 높은 곳에서 포구 쪽을 바라 볼 때 홀연히 펼쳐졌다. 안개는 바다에서 낮게 깔려 몰려오더니 강 하구에서 500m 떨어진 명선도를 덮었다. 섬의 소나무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런 뒤 마치 병목 속으로 빨려들듯 하구로 흘러들어가 정박한 어선과 마을을 덮쳤다가 흩어졌다. 30여분에 걸쳐 전개된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은 회야강 하구 뿐 아니라 울산의 태화강과 외황강 하구에서 볼수 있었던 현상이다. 특히 외황강 하구 개운포에서 피어난 바다안개(해무)는 역사에 기록된 처용설화를 만들어 냈다. 이 설화의 해석을 두고 국내외 학자들이 무려 300여편의 논문을 작성했고 지금도 논의가 그치지 않고 있다.

처용설화는 “신라 제49대 헌강대왕이 개운포에 들렀다가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해서 길을 잃었다”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안개는 항상 영웅이나 기인이 등장할 때 나타나는 장치다. 요즘도 주인공이 등장할 때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인공 안개가 소품으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설화에서 설명된 안개 속에는 동해용왕과 용왕의 아들 처용이 등장한다. 처용은 헌강왕과 함께 서라벌에 가서 벼슬과 아내를 얻는다. 그 뒤 ‘서라벌 달 밝은 밤에 밤드리 노니다가…’로 시작하는 노래로 아내를 범한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의 주인공이 된다.

이 설화의 발단이 된 안개는 울산의 해저지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해양학자들은 평균 깊이가 2,000m인 동해 바닥에 흘러오던 차갑고 맑은 심층수(섭씨 1~2도)가 평균깊이 150m에 불과한 울산 앞바다에서 떠오르면서 차갑고 거대한 물덩이를 만드는 현상을 관찰해 왔다.

울산 앞 바다에 떠오른 냉수괴는 표면의 따뜻한 물(섭씨 18도 안팎)과 만나면서 많은 수증기를 급속하게 피운다.

바다에서 피어진 안개는 해안선에 밀려왔다가 강 하구의 병목을 통해 빨려들듯 낮게 들어온다. 안개가 빨려드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지척을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짙다.

냉수괴가 떠오르는 시기는 늦봄부터 늦여름까지다. 남서풍이 초속 4m 이상 3일 가량 불면 발생한다.

즉 바람이 울산 앞 해안에서 포항쪽으로 불면 해수면 윗 부분의 더운 물이 떠밀려가고 아래 부분에 차오르던 냉수가 급격이 솟구쳐 발생한다는 것이다.

헌강왕(재위기간 서기 875~886) 일행은 지금의 외황강 하구 개운포에서 이 현상을 겪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안개에 대해 당시로는 기이하게 여겼고 일관의 해석이 세월을 거쳐 오면서 설화가 됐을 것이다.

이두로 쓰인 처용가를 해석해 ‘한국의 국보’로 자처한 고 양주동 박사는 헌강왕이 안개구름에 싸여 길을 헤맨 이유를 일식현상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또 유명한 신화학자 황패강 박사는 양주동 박사의 견해에 대해 ‘작가(일연스님)가 안개구름이라고 기록했으면 그렇게 보아야지 왜 일식으로 비약하는 우를 범하냐’며 비판했다. 울산의 안개현상을 알았다면 양 박사는 겸연쩍었을 것이고, 황 박사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헌강왕이 머물렀던 장소는 개운포성터 인근 선수(옛 이름은 선소. 船所)라 불리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왜군을 방비하기 위해 군함을 만들고 조련하던 해군사령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그 이전부터 군사적 요충이기에 신라말 헌강왕이 다녀간 이유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갑작스런 해무 현상은 회야강, 외황강, 태화강 하구에서 꼭 같이 볼 수 있다. 이것은 울산만의 특이현상이다.

울산 앞바다에 짙은 안개를 피운 냉수대는 해수의 교류혼합을 촉진시켜 다양한 해양환경을 만들고 풍부한 해양생물을 길러냈다. 이같은 다양하고 풍부한 환경은 울산을 물산이 풍부한 고을이 되도록 한 것도 틀림없다.

▲ 울산해안에는 바위가 잘 발달돼 해초가 풍부하다. 초 봄 강동해안에 밀려온 해초를 어민이 갈구리를 이용해 걷어올리고 있다.

[플러스 알파]

개운포앞 목도는 해조류 박물관이었다

울산에서 생산되는 해조류도 다양하고 풍부했다.

그 증거를 1968년 문교부가 펴낸 한국동식물도감 제8권 해조류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바다 조류학의 태두인 강제원박사가 깊은 애정과 심혈을 기울여 펴낸 이 도감에는 각 해조류 서식지를 열거하면서 울산 목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 보였다. 총 293종의 해조를 설명하면서 그 가운데 21종의 대표 서식지로 울산의 목도를 꼽았다.

물론 방어진도 열거됐지만 목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도감에는 부산 어청도 흑산도 돌산도 완도 등이 열거되고 지중해와 베링해도 나타난다. 도감을 작성한 강박사가 문헌을 참고했거나 실제 채집한 흔적이다.

그 가운데 울산 목도가 여러 번 열거된 것을 읽게 된다.

40년전 울산바다의 그 풍부한 물목을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식용으로 우수한 해조인 ‘각시서실’이 자라는 곳을 설명하는 항목에는 대표적 청정해역인 울릉도 어청도 흑산도와 함께 목도가 포함돼 있다.

‘실디크리오타’란 항목에는 목도가 지중해 인도양과 같은 먼 나라와 같이 서식하는 것으로 돼있다. ‘델리세아’와 같은 이국종에도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양과 같이 목도가 서식지로 언급돼 있다. 도감에는 많은 종을 한반도 해역에 산출된다고 쓰고 있다. 그러한 종은 비록 목도란 지명이 명기되지 않았지만 목도의 서식종은 앞서 열기한 21종 보다 훨씬 많은 것은 말할나위 없다.

강박사는 “우리나라 연안은 난류뿐 아니라 한류의 영향도 받고 있어 해조상(海藻相 )이 매우 풍부하다”고 책머리말 첫줄에 쓰고 있다. 울산은 그 난류와 한류가 접촉하는 경계다. 경계는 다양성의 집합지다.

울산이란 경계해역 특성은 수질이 겹치고, 해저지형도 동해와 남해 특성이 겹친다.가파른 동해도 아니고 밋밋한 남해도 아니다. 해저 암반이 적당히 뻗어 해양부착생물이 풍부하게 자랄 터전을 갖추고 있다. 한때 울산에서 생산된 해조류는 대구·김천·영천 일대의 수요를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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