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타율
자율과 타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2.1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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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은 효과가 빠르다. 그러나 잘 안 되면 핑계 대기가 좋다. 자율은 효과가 느려도 시작부터 자기만족이며, 일하는 과정이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좋은 결과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승복한다. 타율은 빠른 효과에 비해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자율이건 타율이건 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이야기이고 이 과제를 수행하는 주체가 있기 마련이다. 과제수행의 주체가 개인일 때는 행복의 조건으로서 ‘제 멋에 산다’로 풀이하지만 그 주체가 집단일 경우, 여러 분야의 간섭이 ‘제 잘난 맛’으로 등장한다.

지금 인수위의 활동에도 제 잘 난 맛으로 간섭하려든다. 원시사회, 개인으로서는 태어날 때부터 경제활동이 먼저 나타나고 가정이라는 조직이 형성되어야, 가족(사람)을 다스리겠다는 정치활동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뭐니 뭐니 하여도 사람은 가르치기 나름이라는 교육이 등장하는 것은 집단(가족) 대 집단(가족)의 갈등에서 가르치기가 필요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가며 고대, 근대, 현대에 이르러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며 인간행동의 근본을 따지고, 모든 일은 우리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원효 대사의 깨달음이 심리학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일체유심조는 아주 옛날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의 물을 깜깜한 밤에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이 사실을 안 뒤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온 말이다. 엊저녁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손으로 더듬어 목마른 상태에서 물을 맛있게 마셨는데 환한 아침에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구역질을 해보아야 아무 소용없음을 알고, 엊저녁의 마음먹기와 오늘 아침의 마음먹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유명한 이야기이다.

5, 6년 전 미국의 대협곡 그랜드 캐년에 갔을 때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 위험한 곳이니 주의하라는 경고문 간판만 있지 철조망이나 콘크리트 담이 쳐 있지 않아 의아해 한 일이 있었다. 전망대야 물론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나머지 곳들은 있는 그대로 아이들도 그냥 건너 뛰어넘어 갈 수 있는 상태였다. 옛날 서부 영화에서나 봄 즉한 허름한 목장 울타리 비슷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감시원(ranger)에게 물었다. 대답은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이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것이었다.

국민 정신교육에서 타율이 자율보다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잘 보여주었다. 나쁘게 말하여 개발독재이고, 좋게 말하여 고속성장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경제가 우선이다’는 인류발달의 원칙에 순응하려고 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활동은 그 다음이고, 먹고 살만하고 사람들도 다스려질 만 할 때 교육의 가르침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경제, 정치, 교육이 헷갈려서 어려워지는 것은 이들 세 가지에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자녀교육에서 자율성을 기르기 위한 풍토가 척박하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자율적으로 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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