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화해
40년만의 화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0.2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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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든지 아우자이를 생각하며 베트남을 떠올리게 하는 민속춤, 아우자이의 여성스러움과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전통춤- 다아우엠.’ 식전행사로 아우자이의 물결이 무대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친선대회’라는 베트남교민 위안잔치를 마련한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이금식 지부장의 뒤이은 인사말. 그의 말 속에는 뼈가 숨어 있었다.

“대부분 전후세대이시겠지만, 수십 년 전 우리는 똑같은 약소국이면서 본의 아니게 전쟁터에서 맞서야 했던 아픈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둘도 없는 동반자로 가까워졌으니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27일 오전 ‘사단법인 대한민국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울산광역시지부’가 마련한 베트남교민과의 친선행사가 세 번째로 열린 울산종합운동장 내 울산MBC컨벤션 아모레홀. <베트남교민 여러분 사랑합니다. 항상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축하 조각얼음의 격려 어휘는 참전용사들의 진정한 염원이지 싶었다. 무대 뒤편 현수막의 구호 <We love Vietnamese family!> 역시 화해의 갈망으로 다가왔다.

박맹우 울산시장의 축사가 홀 안을 메워 나갔다. 국제결혼으로 울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베트남교민, 그리고 ‘친선대회’란 이름으로 이들을 3년째 끌어안아 주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게 동시에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였다.

“40년 전 월남전에 참전했던 전우 여러분, 그리고 낯선 이국의 울산에서 시민이 되신 베트남교민 여러분! 참전용사들의 각별한 사랑과 교민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냅니다. 울산에 사시는 베트남교민의 수는 이제 2천3백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박 시장은 내년에 외국인지원센터를 새로 설립하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확대 운영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970년대의 베트남 전쟁터. 이국땅에서 그 숱한 위험의 고비를 운 좋게 넘겼고, 어쩌면 그들에게도 모질고 아픈 상처를 남겼을지 모를 참전용사들. 이분들이 베트남교민 위안잔치를 준비했다는 소식이 처음엔 의아하게만 들렸다. 작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이 문득 떠오른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 베트남교민들을 ‘그들만의 잔치’의 들러리쯤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행사 현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생각은 바뀌고 있었다. 한국의 전몰 영령들에 대한 묵념 때까지만 해도 어색해 보이던 친선대회의 분위기는 베트남 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조각얼음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기를 보듬은 베트남 여성의 표정에도 숙연함 대신 밝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지레짐작은 잘못된 선입견이었고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몰려왔다.

지난번 행사 때도 참가했다는 이수진 울산보훈지청장이 마이크를 받았다. ‘반갑다’는 뜻의 베트남어 ‘쿠에컴’을 그는 친밀감 있게 구사했다.

“베트남 이주여성들을 위한 잔치, 이런 행사는 전국에서 울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대사관에도 보고한 바 있지만 얼마나 대견스럽고 돋보이는 행사입니까. 교민 여러분께서는 울산시민이 되신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셔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잔치는 4회, 5회, 6회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정착하시길 기원합니다.”

베트남대사관에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 왔다는 말도 그는 덧붙였다.

호명 순서가 본의 아니게 늦어졌지만 윤명희 울산시의회 의장도 같은 여성, ‘전쟁으로 맺은 인연’의 베트남교민들에게 간결한 축하인사를 건넸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신 분들이 40여 년 전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베트남 참전 전우회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고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께서도 그곳 현충탑을 참배하시고…. 이번 행사는 양국의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베트남교민들에게는 더 없이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베트남교민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 때 가슴에 손을 얹는 대신 거수경례로 예를 표하기도 했다. 백마부대 군악대 출신 참전용사의 색소폰 연주와 참전용사 부인이 이끄는 국악단의 한국민요 병창은 우호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참전유공전우회 회원들과 울산 거주 베트남교민 사이의 벽이 아직은 두터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했으면 한다. ‘전시세대’와 ‘전후세대’라는 차이야 지울 수 없다손 치더라도 ‘시혜’와 ‘수혜’의 벽을 진심으로 넘어설 때 우리는 가치 있는 참회와 화해의 역사를 새로 써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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