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숲’ 그리고 ‘어메니티’
‘예술의 숲’ 그리고 ‘어메니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0.2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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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학의 숨은 실력자 김승환 동아대 교수가 즐겨 사용한 용어에 ‘어메니티(Amenity)’가 있었다. 영어사전상의 뜻풀이는 ‘기분 좋음’ 또는 ‘쾌적함’이다. ‘어떤 장소나 기후 등에서 느끼는 쾌적함을 일컫는 용어’라고 소개한 네이버백과사전은 조금 길게 그 배경까지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농촌 어메니티 운동 또는 농촌 어메니티 정책이 유행하면서 의미가 확대되었다. 농촌 특유의 자연환경과 전원풍경, 지역 공동체 문화, 지역 특유의 수공예품, 문화유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쾌적성을 주는 요소를 통틀어 일컫는다.”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농촌의 모든 경제적 자원이 농촌 어메니티이다. 지금은 어촌 개발이나 각종 경제 분야에서도 활용되면서 쾌적성만을 의미하는 단순한 추상명사에서 쾌적함과 만족감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함축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네이버사전은 뒤끝에 쾌적한 도시환경을 ‘도시 어메니티’라고 정의했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이러한 도시 어메니티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참 아쉬웠노라고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의 언저리다. 이름자를 따서 누군가가 남구청과의 사이 회관 동쪽의 소공원은 ‘문화공원’, 레스토랑 쉼터를 끼고 간선도로와 맞닿은 남쪽과 서쪽의 ‘ㄴ’자형 공간은 ‘예술의 숲’이라고 명명했다. 시민들에게는 모두 소중한 공간이지만 이 둘 중에서도 아쉬움이 더한 곳을 짚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의 숲’이다.

8억8천만 원을 들여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두고 시작한 예술의 숲 조성 공사는 5개월 만인 올해 4월 중순에 끝이 났다. 공사는 간선도로 인도변의 조경수 울타리를 과감히 걷어내고 시야를 탁 트이게 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다. ‘편리한 접근성 확보’에 뜻을 두었다.

동시에 대규모 녹지가 꾸며졌다. 큰키나무(喬木)로 느티나무 45그루와 소나무 51그루가 심어졌고, 작은키나무(灌木)로 배롱나무 24그루, 회양목 200그루, 철쭉 3천700그루가 심어졌다. 송엽국, 송악, 맥문동 같은 초화류(草花類)도 5천 포기가 뿌리를 내렸다. ‘휴식·문화 공간의 제공’이 숨은 뜻이다. 한 마디로 ‘푸르고 아름다운 문화예술회관의 이미지를 높인다’는 취지를 담았다.

준공식에 즈음해서 문예회관 몇몇 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능소화처럼 피어났다. ‘이제야 비로소 푸르고 아름다운 회관의 이미지를 선사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과 기대감에서였다. 시민들 가운데서도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하나둘 불어났다. 먼 곳, 이방지대, ‘그들만의 공간’으로만 느껴졌던 회관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 말고도 시야를 그토록 답답하게 가렸던 인디언 머리장식 같은 조형물이 말끔히 치워진 것도 그 이유의 하나였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표정들도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몇 시립예술단원들은 넝쿨식물 그늘 아래 놓였던 등받이의자의 안온함과 그윽한 운치의 사라짐을 몹시 섭섭하게 여기고 있었다. 저무는 가을(晩秋)의 정취에 이제는 더 이상 빠져들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서글퍼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러는, 감히 ‘예술’이란 이름을 붙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비(非)예술적으로 어설프게 꾸며진 ‘예술의 숲’ 분위기를 더 서운해 하고 있었다. 아름답지도 못하고 조형미와는 사뭇 거리가 먼, 직선으로만 멋없이 다듬어진 인조석(人造石) 분수대의 삭막함에 치를 떨거나 분노를 느끼는 이들도 나타났다.

그 견고한 바닥재를 갈아엎고 빗물도 빨아들인다는 생태블록(에코 페이버, echo paver)을 대신 깐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만했다 치자. 하지만 줄눈 하나 가지런히 맞추지 못해 선의 행렬이 볼썽사납게 충돌을 일으키고 마는, 반예술(反藝術)의 흔적을 차마 눈뜨고는 못 보아주겠다는 이도 생겨났다.

공사 지휘의 책임이 지녔을 성싶은 울산시 관계관이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했다. 잘못된 부분을 서둘러 보완 처리하도록 시공사에게 과제를 던져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언질은 ‘검토’ 선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 아래 실무 선의 답이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보수해야 할 하자’가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어메니티’란 용어를 최근 울산의 한 기초자치단체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비록 외래어이긴 해도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쾌적함과 만족감’이란 그 뜻풀이 덕분이지 싶다. 준공 반년이 지났지만 쾌적하지도 만족스럽지도 못하다는 지적이 꼬리를 물고 있는 ‘예술의 숲’을 ‘어메니티’의 개념을 살려 리모델링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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