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의인
용기 있는 의인
  • 김정주 기자
  • 승인 2009.10.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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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제목에 ‘노 웨이 아웃(No Way Out)’이란 게 있었다. 의역하면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런 상황이 울산시청 본관 건물과 울산시의회 의사당 건물에서 일주일 넘게 전개되고 있다. 장애인부모 단체에서 벌이는 현관 앞 철야농성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

울산시는 현관 반대편 후문 통로에 검색 공간을 마련하고 신분을 일일이 확인한 다음 출입 명찰을 달게 한 뒤에야 청사 안으로 들여보낸다. 민원인은 물론이고 취재기자, 심지어는 공무원까지 그 대상이 된다. 낯이 설거나 신분증이 없으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울산시청을 방문한 13일과 그 전날에는 의사당 건물 1층의 승강기(엘리베이터) 두 대가 모두 작동을 멈췄다. 한 대에는 ‘점검중’이란 안내글자가 나붙었고 다른 하나에는 그조차 없었다. 휠체어의 진입을 막겠다는 의도에서 내려진 비상조치였다.

의사당과 본관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벌써 여러 날 잠금 쇳줄이 층층이 채워져 있다. 본관 3층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김형오 의장을 의사당 쪽으로 안내할 때만 잠시 개방했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조치는, 의사당 복도와 계단 사이에 처음 보는 방화셔터가 내려져 시야를 온통 가로막은 사실이다.

김형오 의장은 아래 위 계단은 보지 못한 채 시찰을 마쳤다. 수고한다며 악수 나누고 등 두들기며 격려했던 공무원들의 대오가 필시 자신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한 것으로만 알았을 것이고, 불상사를 일으킬지 모르는 장애인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차출된 별동대란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시청 앞마당에 진을 친 경찰차량과 경찰병력들도 자신을 경호하기 위한 존재로 잘못 알았을지 모를 일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불편을 호소하는 공무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통행 불편에다 언제 야간 비상대기조에 들지 몰라 생기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누구를 위한 봉사’인지, ‘창살 없는 감옥 신세를 언제까지 져야 하는지’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는 뒷공론도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과연 누구 때문에, 누구를 위해 지출되고 있는 것인지?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인사는 아직 보거나 듣지 못했다. 고위층 몇 분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장애인 단체 사람들의 기습적 일탈행위를 미리 막기 위한 명분만 득세할 뿐 그 외의 모든 설명, 변명, 해명이나 불평불만들은 음식쓰레기처럼 소멸기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비상대기 지시에 따라 밤늦게까지 켜두는 시 청사의 환한 조명,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출동한 그 숱한 경찰병력의 간식도 따지고 보면, 모두 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이다. 이와 같은 비용이, 참으로 다수의 시민들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차제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들이 없다. 종교계 인사도, 교수나 식자층도, 그 밖의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함구로만 일관한다. 언론마저도 침묵이 금이라는 금과옥조 뒤에 숨은 채 바깥으로 나서는 일이 없다. 대부분은 장애인단체 사람들의 장기 철야농성 행위가 ‘원천적 불법’이라는 이유를 단다. 불법이니 왜 강제 철수라도 시키지 않느냐 반문하면 ‘장애인들이기 때문’이란 구차한 변명이 돌아온다. 장애인 그들은 아주 골치 아픈 존재이고 수혜의 대상일 뿐이란 그릇된 선입견이 아직도 팽배해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이 엄청난 갈등의 중재에 나서는 이도 없다. 시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탓일까? 우리 울산에 ‘중도적 원로’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 참아 왔던 목소리를 터뜨린 인사가 있었다. 장애인가족 몇몇에 의한 의사진행 방해 ‘소동’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소리도 듣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이은주란 여성의원이다. 그녀는 울산시의회 제123회 임시회 첫날인 13일, 제1차 본회의 때 ‘5분 자유발언’을 얻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사회복지에 대한 단체장과 공무원들의 인식 결여를 부각시키려고 그녀는 애썼다.

이 의원의 주장이 옳았는지 여부를 여기서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녀의 용기에 격려를 보내고 싶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내뱉고 싶은 말이 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뭉쳐 있을 중증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스스로 철수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 해줄 그런 의인(義人)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려줄 의인이 113만 광역시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더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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