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생가 복원을 보며
외솔 생가 복원을 보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10.0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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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출신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생가가 중구 동동 선생의 옛 생가 터에 복원됐다. 그 옆에는 기념관도 들어섰다.

지난 2002년 말 복원추진위원회가 발족된 이래 부지 매입, 기념관 추가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다가 7년 만에 준공을 보게 된 것이다. 복원에 47억 5천만 원이 투입됐다. 생가 및 기념관 개관식은 당초 10월 19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신종 플루로 인해 내년3월 23일로 연기 된 상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외솔 선생의 생가가 옛 병영에 복원돼 반갑다. 특히 자라는 세대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기쁘다. 또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울산지자체에겐 동기부여를 확고히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외솔은 한글학자이기 전에 애국자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우리 말 본’을 저술했다. 혹자는 선생을 한글학자로 평가하지만 반(反) 일본 선각 지식인으로 보는 게 옳다. 그가 태어난 1894년은 아직 우리 사회가 한글보다 한자(漢字)를 우선시 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외솔 선생도 서당에서 수학한 적이 있다. 그가 젊은 시절, 우리말에 몰두 해 있을 때는 암울한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에는 일본인들이 우리말과 글을 강제로 없애려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역경을 무릅쓰고 우리말을 정립하고 보존했다. 그래서 외솔을 애국지사로 보는 게 옳다.

이런 외솔 최현배 선생을 제 자리에 모셔 오고 그의 삶터를 새로이 꾸미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기까지 한글 관련단체와 지역 관계자 그리고 후손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 관할 중구청과 외솔 기념 사업회가 복원 예산을 타 내는데 직, 간접으로 노력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복원된 외솔 생가가 이런 노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가 들려 유감스럽다. 복원공사가 정성스럽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고 곁에 들어선 기념관이 생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생가가 인접 주택과 뒤 섞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한다는 평(評)도 있다. 향후 예산을 다시 편성해 생가지역을 확충할 때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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