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의 해결장애
중증의 해결장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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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울산시청 본관 후문(=신청사 북문)의 출입이 개청 후 처음으로 통제됐다. 23일 오전 10시부터 청사 출입자들에게 까다로운 신분 확인 절차가 진행됐다. 공무원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오전 7시부터 열기로 된 이 문은 통제 직전까지는 출입 금지였다. 필시 간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문제는 지금도 진행형임이 분명했다.

“하도 교묘하게 진입을 시도해서 이렇게라도 안할 수 없었습니다.”

통제의 목적은 ‘장애인단체 관계자의 출입 차단’이었다. 그 시각, 현관문(신청사 남문)이 굳게 닫히고, 그 앞 광장에서는 장애인단체 회원 90여명이 구호가 꼬리를 물었다.

“울산시청, 내가 반드시 때려 부순다!”

“우린 밟으면 밟을수록 더 힘차게 나아간다!”

피켓 구호들도 적개심이 넘쳐 났다.

“시청 건물은 으리으리! 장애 복지는 전국 꼴찌!”

“선거가 코앞이다. 시장님? 내년에 함 보제이.”

“합의사항 나몰라라! 장애인 폭력연행? 박OO OUT!”

전날(22일) 오전부터 시청 남문 쪽에 진을 쳤던 울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울산장차연)의 협상대표 5명은 이날 이른 오후부터 4시간 가까이 복지여성국장실에 눌러앉았다. 돌아온 것은 ‘불법 점거이므로 나가 달라’는 퇴실 요청이었다. 구두 요청, 공문 요청에도 응하지 않자 급기야 공무원과 경찰이 출동했고, 밤 10시 반쯤에는 정윤호 공동대표 등 협상대표 5명이 업무방해 혐의로 강제 연행되고 말았다.

앞서 밤 9시 22분, 취재진들의 휴대전화에는 숨 가쁜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긴급] 장차연, 시청 점거 농성 중, 경찰 진입 임박!”

강제연행 과정에서 장애인 부모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3명이 다쳤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임명숙 국장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울산장차연의 요구사항은 ‘2008년 합의사항의 조속한 이행’이었다.

‘장애인복지를 위한 장애인 전수조사와 주·단기 보호시설 확충·활동보조 추가시간 월 100시간까지 지원 및 자부담 시비 지원·장애인 진료 의료기관 지정 및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대책 수립’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데도 ‘수용 불가’의 숨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어느 공무원의 혼잣말처럼 ‘모든 것은 예산이 말해준다’는 것이었다.

울산시가 올 들어 파악한 울산지역 중증 장애인 수는 1급 4천6명을 포함해서 대략 1만명. 2년 전부터 ‘이동약자 편의 증진을 위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중증 장애인 도우미들의 ‘활동보조’ 비용이 ‘예산 먹는 하마’로 떠오르면서 만만찮은 고민거리가 생겼다.

시로서는, 울산장차연이 요구하는 전수조사도 4~5억원이면 해결할 수 있지만 내년도 당초예산에 섣불리 반영할 처지가 못 된다. 다른 지자체나 다른 수혜대상과의 ‘형평성’도 감안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시 관계자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울산장차연에 대한 선입견, 요구에 응했을 때 예상되는 파장, ‘시장님의 의지’도 한데 맞물려 있다는 귀띔이 나왔다.

“집단행동 하면 다 들어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 단체, 장애인들 앞세워 이익 추구하는 단체라던데….”

“모 정당이 뒤에서 조종한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 반론도 예사롭지 않다.

“대화의 장을 안 만들겠다니 대화로 푸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양반들, 장애인을 사람으로 안 보고 동물 취급하는 것 같아요.”

“O 눈에는 O로밖에 안보이니 그런 행동들이 나오지.”

18개 단체가 참여하는 울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울산시당국 사이에는 ‘소통’이 없다. 마주보고 광속으로 접근하는 혜성 같기도 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울산시가 장애문제에 대한 해법을 못 찾고 악재만 키우는 ‘중증의 해결장애 환자’로 비쳐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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