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해안… 한반도 조형예술 원형 탄생시키다
공돌해안… 한반도 조형예술 원형 탄생시키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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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석지대2-서생명 신암해안

땅속에서 둥글게 풍화된 뒤 노출된 화강암

▲ 풍화 껍데기가 벗겨지는 과정에 노출된 거대한 핵석이 마치 계란처럼 보인다. 멀리 풍화된 화강암이 수직으로 서있는 신선암이 보인다.

[개요]

서생면 신암리 해안은 둥근 바위가 뒹구는 이채로운 곳이다.

바위의 직경은 40센티미터 안팎이다. 수백개가 해안에 몰려있거나 목이 잘록하게 기반암에 붙어있다. 어떤 바위는 직경이 5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 돌들은 몽돌처럼 파도에 닳아 둥글어진 것이 아니다. 화강암이 수백만년 동안 땅속에서 풍화될 때 견딘 단단한 돌이다.

화강암은 가로 세로로 갈라지는 특성이 있다. 갈라진 암석은 땅속에서 수분을 만나 각 모서리부터 으스러진뒤 둥근 형태로 남는다.

부스러진 흙이 바닷물에 씻겨가고 남은 돌이다.

알돌 또는 핵석(核石.core stone)이라 부른다.

이 해안에서는 원형(圓形)에 대한 닮음현상이 나타난다. 핵석에 붙어 사는 담치나 해조류도 둥글고, 고대인이 빚은 인물상도 둥글다. 심지어 이 해안에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의 돔도 둥글다.

둥근 바위에 앉은 담치도 둥글고

고리원전 돔까지 만상이 둥글다

▲ 모암에 박혀있는 핵석에 담치가 붙었는데 그 모양도 핵석처럼 원형을 갖추고 있다.

[답사기]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매우 작은 유물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이 유물은 울산의 먼 조상이 흙으로 빚어 구은 여성상이다. 세로 3.6㎝ 가로 2.5㎝다.

‘여인상’이라 제목을 붙여놓은 이 유물은 여성의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해 빚은 것이다. 작품 옆에는 ‘울산 신암리’란 출토 장소가 적혀 있다.

6,000여년전 울산의 바닷가에 살았던 한 수렵채취인이 소망을 담아 만든 공예품이었다.

 그것을 본뒤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해안을 즐겨찾게 된 나는 이곳에서 특이점을 발견했다. 이 일대 대부분의 바위가 둥근 형태였다. 마치 ‘여성상’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닮은 것 같았다.

 기반을 이루는 바위 곳곳에 둥글고 잘록한 형태로 붙어있고, 어떤 곳에는 수백개가 바닷가에 딩굴고 있다. 그 가운데 직경 5미터나 되는 바위는 계란처럼 껍떼기가 벗겨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이 돌을 만나면 파도에 굴러서 깎였다고 판단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직경 5미터나 되는 둥근 바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 정도 크기로는 파도에 굴러다닐수 없다.

▲ 화강암이 땅 속에서 풍화돼 핵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식도. 모암을 덮고 있던 흙이 걷혀지면 압력이 감소하고 암석에 수직, 수평으로 금이 간다. 서서히 풍화돼 모서리가 깎이고 다시 풍화된 흙이 걷히면 핵석이 노출된다.
이것은 땅속 깊은 곳에서 이미 둥글게 풍화된 핵석이 노출된 것이다.

이 일대는 흙을 파면 대게 푸석푸석하게 풍화된 마사에 감싸져 있는 핵석을 볼수 있다.

수백만년전 형성된뒤 잘게 풍화되고 6000년전 바닷물이 이곳에 닿으면서 씻어내린 풍화의 산물이다.

신암리 해변의 바위는 모난 것이 없고 부드럽다.

심지어 바위에 붙은 담치도 둥근 모습을 하고 있다.

부드럽게 마모된 바위면에는 갈조류인 까시리가 촘촘히 붙어있다. 역시 둥근 형태다. 겨울철 이곳에 가면 어민들이 전복 껍떼기로 긁어 바구니에 담고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신암리 옆 신고리원전에 들어간 비학마을 해안에 내려서면 둥그런 암석이 40미터 가량 뻗어있다. 한 덩어리의 거대한 화강암이 땅속에서 풍화된 뒤 바닷물에 씻겨 수면에 길게 드러난 것이다.

너비는 5미터 가량인데 이렇게 길게 뻗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은 보기드문 경관이다. 이 지형은 원전을 지으면서 매몰시키지 않고 남겨뒀다. 공사관리인은 이 지형을 자연방파제로 남기고 백사장도 50m 가량 남긴다. 이곳에서 보면 고리원전의 둥근 돔이 보인다. 그 모습조차 이 마을의 지형과 닮은 것처럼 보인다.

바위도 둥글고, 바위에 붙은 담치도 둥글다. 원형은 가장 좁은 면적에 가장 많은 것을 담을수 있고 완전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最古의 공예품 이곳서 출토

인류문명사 연결된 여성상… 바이칼·유럽과 동일

▲ 흙으로 구운 한반도 판 비너스상(위)과 비슷한 시기 프랑스 페레네산맥 인근에서 발견된 비너스상.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한 이 조형물은 인류가 만든 미의식의 출발이다.

[플러스 알파]

신암리 여성상의 학술 명칭은 비너스상이다.

한반도에 웬 비너스상이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국제적으로 통일된 이름이다.

선사인들은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성상을 흙으로 빚은 뒤 오래 간직하기 위해 구웠다.

이같은 여성상은 프랑스 피레네산맥 인근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바이칼호 주변에서도 발견됐다. 엉덩이와 가슴을 크게 과장한 것이 특징인데 모두가 비슷한 형태다. 그래서 학자들은 선사인의 이동경로를 가르켜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여기고 이름을 비너스상이라고 통일했다.

동서문명교류사 연구자인 정수일박사(별명 무하마드 깐수)는 이 여성상이 출토된 약 20군데 지점을 연결하면 서유럽에서 출발해 동부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지나 동시베리아로 이르는 이른바 비너스길이 형성된다고 밝혔다.

신암리 비너스는 1974년 국립박물관이 우리나라 신석기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신암리 바닷가와 닿아 있는 서생초등학교 교정을 조사하던 중 발굴했다. 이곳은 1935년에 일본인 고고학자 사이토가 빗살무늬토기를 발견함으로써 주목되던 곳이다.

진귀한 이 비너스상은 1997년 신암리에서 30㎞ 떨어진 울산 남구 황성동 패총에서도 출토됐다. 비너스상이 한반도에서 울산해안에서만 잇따라 발견됐다. 이 사실은 울산의 조형예술가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혈통의 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너스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6000년전 쯤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불어난 바닷물이 이 해안에 도달한 시기와 같다.

그때부터 바닷물은 기슭을 핥고 씻어내려 지금과 같은 해안선을 만들었다.

이 비너스상을 통해 우리는 인류동진의 자취를 살핀다. 또 로마~바그다드~장안~경주(울산)로 이어지는 5만㎞의 실크로드를 읽을수 있다.

이 작은 상은 서울 용산에 새로 지은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관에 출토지를 울산 신암리로 표기한채 전시돼 있다. 국립박물관이 중앙청 자리에 있을 때는 아예 대형 돋보기를 세워놓고 전시했을 만큼 작다.

흥미로운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인 중앙홀에 걸려있는 것이 울산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 탁본이다.

울산에서 창조된 빛나는 유물들이 국립박물관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울산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된다. 비너스상과 암각화는 한반도 문화 예술의 원형(原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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