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무의식의 고향이 있다
그곳에 무의식의 고향이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1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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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그릇 원형도 자연속에 함축돼
▲ 천전리 암각화에서 그려진 일부 문양은 아파벳 초기문양과 닮았다(상) 이집트 남부 석회암 벽에서 발견된 아파벳의 초기 문자(아래)

알파벳 원형과 천전리암각화가 닮았다

알파벳 4000년의 뿌리’ 특집을 다룬 과학잡지 ‘뉴튼’(2008년5월호)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장 오래된 알파벳 초기 문자 가운데 서너가지가 천전리 문양과 닮았던 것이다. 줄을 꼰 문양이나 팔을 치켜든 사람의 모습 등이 비슷했다. 미국의 존 대널이란 고고학자가 20세기말에 이집트 남부 사막의 석회암 벽에서 발견한 것으로 소개돼 있다. 줄을 꼰 알파벳의 원형이라는 문양은 천전리 문양과 비슷한 것이 있다. 알파벳 원형은 물결무늬에서 M자가 생겼고, 소의 머리모양에서 A자가, 사람머리 모양에서 R자가 생겨났다고 해석한다.

▲ 다양한 물돌이 모습을 보여주는 대곡천 가장 위쪽에 천전리암각화가 있고 아래쪽에 반구대암각화가 있다. 반구마을은 물길이 끊어진 옛 하도에 형성돼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원형을 추적해 가면 동서양이 동일하거나 비슷하다. 더욱 아득한 원형의 기원을 찾아가면 동물과 식물계에도 구분이 없다.

울산대학교 생명공학부 한인섭 박사는 사람의 암 세포와 식물의 세포를 함께 연구한다고 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분자단위에 이르면 동물이나 식물의 작용 메커니즘이 거의 같다”고 말했다.

천전리 암각화 문양 가운데 이어진 마름모 2개에서 국어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를 거의 다 만들어 낼수 있다. 전자시계 문자판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국어 자모의 원형을 문의 창살무늬에서 착상했다고 하는데, 그 창살무늬의 원형도 따져가면 마름모에 이른다.

 

 

그릇의 원형은 뿔잔이다

▲ 프랑스의 구석기 암각화 지대에서 발견된 로셀의 비너스. 강력한 모계사회의 주인공이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뿔잔은 그 시대에 소중했던 물품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나는 2009 울산국제옹기엑스포와 관련 옹기를 비롯 모든 그릇의 원형은 짐승의 뿔이라고 생각했다. 선사인들이 맨 처음 뿔을 거꾸로 세워 물을 떠 마시거나, 곡식을 담는 기능을 발견했을 때의 환호작약을 상상할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석호 박사는 “선사시대 암각화에는 그들의 대표적 문명이기로 짐승 뿔이 그려져 있다”며 대표적 얘로 오른손에 각배를 든 여성상을 보여줬다. 이 상은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후기구석기때 조각상으로 1912년 프랑스 도르도뉴지방의 바위 은신처에서 발견됐다.

짐승 뿔의 생산은 제한적이다. 사냥에서 획득한 한 마리의 물소는 여러 사람이 고기를 나눠 먹어도 뿔은 2개 밖에 없다. 필요성이 커 짐에 따라 흙으로 뿔 모양을 갖춘 그릇을 만들었을 것이다. 선사시대 빗살무늬 토기들은 대부분 끝 부분이 뾰족하다. 세우기 힘든 형태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만든 것은 뿔에서 받은 인상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끝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 역시 뿔잔의 변형일 것이다. 선사인들은 한번 고안된 기물은 현대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유행시켰다.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의 경우는 처음 고안된뒤 수십만년간 똑 같은 형태로 유행했다.

한반도에서도 뿔잔을 말위에 얹거나 받침대 위에 얹은 모습의 토기를 남겼다. 울산의 대장장이 출신으로 왕권을 얻은 석탈해가 뿔잔을 통해 자신의 위엄을 나타낸 사례가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지중해 연안의 고대인들도 뾰죽한 뿔잔을 만들어 사용했다. 서양인들은 이것을 통틀어 라이

▲ 지중해에서 발견된 뿔잔.

▲ 지중해에서 발견된 뿔잔.

톤이라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것이 트로피다. 유리나 은이나 주석으로 만드는데, 모두가 샴페인을 담거나 맥주를 담거나 하는 것이다. 트로피의 원형도 뿔잔임에 틀림없다.

▲ 물길이 산을 깎아 거북모양을 이뤄 반구대라 이름 붙여진 지형.

기후 변동기 퇴적암 지대에 형성

통천지형은 연구·대곡천 못 살펴

송언근씨(경북대학교 지리교육과 조교)와 조화룡교수가 공동발표한 ‘한국에 있어서 감입곡류절단(嵌入曲流切斷)의 지형발달’(지리교육 제7권, 1994년)은 남한지역 감입곡류의 발생원인과 분포를 조사했다. 또 감입곡류의 목이 잘리는 과정과 그러한 지형변화가 일어난 시기 등을 정리했다. 곡류절단의 총수를 113개로 조사했으며 대부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하천별로는 한강이 가장 많고 낙동강과 금강 순이었다.

잘린 곡류는 주로 가운데 구릉을 남기고 물길이 구릉 주변을 둥글게 돌던 곳(옛 하도)에는 토탄층이 형성되고 그 뒤에 경작지나 취락지로 변했다.

연구자들은 토탄을 분석해 곡류의 목이 잘린 시기를 계산했는데 주로 빙하기와 관련있는 45,000년 전후였다.

잘린 옛 하도와 지금의 하도 사이 높이도 측정했다. 주로 11~20m가 많은 것으로 집계했다. 이 연구를 토대로 하상의 높이차를 평균 15m로 보고, 지금부터 45,000년전에 잘린 것을 계산하면 물길이 하천바닥을 1년에 0.33㎜씩 파내려간 것을 추정할수 있다.

또 곡류절단에 의한 옛 하도의 지형발달 과정을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초기에는 홍수가 나면 지금과 옛 하도 양쪽 다 물이 흐르고, 옛 하도의 자갈이 남아있어 경작지로 사용되지 않는다. 중기에는 범람한 퇴적물이 자갈위에 쌓여 초목류가 자라고 토탄이 형성된다. 말기에는 큰 홍수에도 옛 하도는 범람하지 않아 안전한 취락이나 경작지로 바뀐다.

이들은 전국에서 5개의 곡류절단지형을 표본으로 조사했는데 울산 웅촌의 통천리 지형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통천리와 석천리에 2개의 옛 하도가 이어져 있는 특이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광률씨(경희대학교 지리학과 강사)와 윤순옥교수(경희대학교 지리학과)가 집필한 ‘경기·강원지역 감입곡류 하천의 곡류절단면 분포특성’(대한지리학회지 제39권 제6호, 2004년)은 이 분야 연구에 한결 상세하고 진일보한 성과를 보여준다.

우선 경기·강원지역의 감입곡류 절단지형을 총 128개로 파악, 송언근씨 등이 10년전 파악한 전국 총 113개 보다 많다. 지금과 옛 하도의 높이 차이가 무려 217m나 되고, 옛 하도가 많이 바뀌어 지형이 뚜렷하지 않은 곳도 섬세하게 찾아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절단면이 많은 곳을 지질별로 분류해 퇴적암이 가장 높고 화성암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했다. 울산지역의 통천리와 반구대 일대도 퇴적암이다.

또 단층선에 직교하는 하천에서 곡류절단이 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 통천리는 동래단층과 인접하고 반구대는 양산단층과 근접한 곳이기 때문에 연관성을 추정할 수 있다.

곡류절단이 빈번하게 일어난 시기는 8만년에서 15만년전으로 길게 잡았고 주로 빙기와 간빙기 사이의 기후변동기에 일어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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