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엑스포 유감
옹기엑스포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0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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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담화문을 발표했다. 시장의 담화는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우선, 울산대공원 풍요의 다리 앞에서 시작되는 ‘숨 쉬는 공간’의 숨통부터 틔웠다. 공사자재들이 볼썽사납긴 해도 두 달 가까이 금줄로 막혔던 대공원 산책길은 이제 더 이상 ‘출입금지’ 대상이 아니다. 빗장은 담화 발표에 때맞춰 슬그머니 풀어 놓았겠지만 안내 문구나 멘트 한 마디 없는 걸 보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재단법인 ‘2009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조직위원회’는 공사를 이유로 7월 15일부터 11월 25일까지 주 산책로인 ‘느티나무길’ 일부 구간의 이용을 제한했다.※

담화문이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9일 오전, 남구 옥동에 산다는 교양 있는 30대 초반의 주부 2명이 ‘해방구’를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뼈대만 앙상한 채 산책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둥근 목조구조물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더니 그녀들은 청하지도 않은 말을 건네 왔다.

“여러 달 산책 공간을 빼앗겨서 많이 속상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죠.”

“옹기엑스포 연기 소식 어제 인터넷 보고 알았는데, 답답하고 신경질까지 다 나지 뭐에요.”

“어차피 맞을 뺨, 나중에 더 맞는 것보다 미리 먼저 맞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요.”

“시민 세금 엄청나게 쏟아 부어 놓고선 신종플루 핑계로 한 달 앞두고 그만두겠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요.”

“이렇게 큰 일 저질러 놓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 없으니 정말 답답해요.”

싸늘한 반응은 다른 이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현충탑 쪽으로 향하던 60대 후반의 할아버지 한 분이 비계로 둘러싸인 첨성대 모양의 목조구조물을 가리키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저거, 뭐 세우는 거지? 바벨탑이라도 되나?”

‘바벨탑’이라면 창조주의 권위에 감히 도전했던 어리석은 인간 군상들을 빗대어 나무랄 때 인용하는 표현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뜻풀이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옹기엑스포는 애초부터 오르지도 못할 나무, ‘바벨탑’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담화문. 그 속에는 ‘2009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1년 연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 달 동안 다양한 계층의 국내외 관람객들이 다녀가는 만큼 일반적인 공연, 전시와는 달리 신종 인플루엔자를 차단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불가항력적인 사태인지라 비장한 각오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누군들 탓할 것인가.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아쉽기는 해도 옳은 판단’이라고 받아들였을 법도 하다.

한데도 비아냥거리는 소리들이 꼬리를 문다. 단체장의 충정 어린 담화를 희석시키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해서인가? 혹자는 이렇게 빈정거리기도 한다.

“시장님은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일 게 분명해.”

담화문 발표 하루 전까지는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정부의 취소, 축소 또는 연기 권고가 있은 직후 울산 정가의 정서는 적어도 이랬다.

“울고 싶던 차에 뺨이라도 때려주었으니 속으론 얼마나 고마웠을까.”

‘192억 플러스 알파’라는 거액을 옹기단지에 쏟아 부은 2009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는 단체장을 노심초사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인천광역시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세계도시축전’이 일찌감치 ‘실패작’으로 낙인찍힌 사실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혹시 ‘우리 시장님’께서는, 재선 가도를 호기 있게 질주하고 싶었던 안상수 시장이 ‘재를 뿌리며’ 가슴 치던 모습을 동병상련의 심사로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세 번 내리 제작에 실패한 외고산 마을의 ‘기네스 옹기’는 옹기엑스포의 실패를 미리부터 예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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