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예우
최소한의 예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8.2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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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예우(禮遇)는 사람의 도리이자 사회지도층의 덕목이다. 여론주도층에도 똑같이 요구되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분향소 주변을 어지른 일이 그들에겐 하찮았을지도 모른다. “빈소라면 으레 그런 법이지. 뜬눈으로 밤새울 상주 생각해서 화투판이라도 벌려주는 것, 그게 바로 예의 아닌가?” 그러나, 화투판이고 술판이고 간에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하고 뒤끝은 깨끗해야 좋다.

전직 국가원수를 마지막 보내던 날 울산대공원 동문 광장의 ‘시민분향소’를 아침 일찍 찾았다.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차렸다는 빈소라는데 주변의 분위기는 너무 산만했다. 지저분하게 널린 먹자판 쓰레기, 무성의하게 포갠 근조(謹弔) 휘장, 아무렇게나 놓인 조문록하며…. ‘명박산성 촛불문화제’ 때 바닥 쓰레기까지 말끔히 주워 담던 손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저 모양인지 싶었다.

상주는 시야에 잡히지 않고 분향소는 숙연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와중에도 경건한 자세로 분향(焚香)의 예를 갖추고 발길 돌리는 산책길 시민들.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

격이야 달랐지만, 또 다른 전직 국가원수의 두어 달 앞선 타계 때도 어리둥절한 일이 같은 곳에서 벌어졌다. 이른 아침, 울산대공원 동문 광장의 분향소는 젊은이들이 지키고 있었고, 조문객이 찾기 시작할 무렵 그들은 녹음기를 틀었다. 잠시 귀를 의심해야 했던 것은 흘러나온 음악 때문이었고, 조곡(弔曲)을 대신한 것은 엉뚱하게도 팝송이었다.

‘때와 장소’의 상식론은 어디에도 통할 수 있는 법. 앞서의 두 사례가 재야권의 경우라면 나중의 사례는 여권의 경우다.

국장(國葬) 소식과 함께 종하체육관에 공식분향소가 차려진 첫날, 선출직 VIP 수십 명이 첫 순번으로 참례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표정만은 그게 아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장난스러운 표정만큼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직무 유기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조문록 서명을 소홀히 한 것도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조문정국’을 경계한다손 치더라도 그런 류의 노출은 자제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여권이든 재야권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고 예우할 줄 아는 일,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지나치게 예를 갖춘 나머지 과공비례(過恭非禮) 소리를 듣는 경우도 더러 있다. 울산에서 손꼽히는 어느 재래시장 진입 길목. 그곳에는 눈길 끄는 현수막 하나가 두 달이 넘게 걸려 있었다. <저희 OO상가시장을 방문해 주신 OOO 구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OO상가시장 상인일동.>

‘구청장님’의 기록사진까지 들어간 이 환영 현수막은 최근에야 내려졌다. 사전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측근의 귀띔이 있고 난 뒤의 일이었다. 결과를 떠나 ‘고맙게 해 주신’ 단체장에게는 한동안 싫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처지를 바꾸어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자. 현수막의 존재를 눈엣가시로 여겼을 고객이나 상인들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 적이 있었던가? 최소한의 예의도 저버렸다는 지적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과공(過恭)이 비례(非禮)라면 비공(非恭)도 비례(非禮)다. 분향소에서, 그것도 전 국가원수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했던 사회지도층 인사나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게 권한다. 가슴에 손 얹고 잠시나마 묵상의 시간 가져 보시기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을 사자성어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한다. ‘최소한의 예의’도 그런 역지사지의 생각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을 때라야만 지켜지지 않을까?

/ 김정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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