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이 졌다 하면서도
큰 별이 졌다 하면서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8.19 2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사의 흐름에 굵은 획을 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방송매체들은 “큰 별이 졌다”며 애도의 분위기를 앞 다투어 전했다. 다음날 조간신문들은 수식어만 조금씩 달리했을 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란 제목을 시커멓게 뽑았다.

반야(反野) 성향의 한 지방지도 ‘한국정치의 거목’이라며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울산시당도 애도(哀悼)의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울산의 바닥 정서도 살필 겸 서거 다음날 이른 아침 ‘공식 분향소‘가 차려진 종하체육관을 둘러보았다. 작업에 매달리느라 밤잠을 설쳤다는 시청 직원 몇 가운데 하나가 비아냥거리듯 불쑥 내뱉은 말이란 이랬다. “노벨상 탔다고 국장(國葬)까지 해주나?”

국화 1만 송이가 제자리에 놓이고 돗자리 예비도 끝난 후 오전 9시부터 조문객을 맞이한 분향소에는 상주 한 사람 없이 썰렁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큰손님’은 10시 즈음해서야 처음 들이닥쳤다. 검은 상복 차림의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원, 일부 기관장이 첫 조문 행렬에 가담했다.

조문록 서명에 이어 합동분향이 끝나자 취재진은 지역 어른인 광역시장과 한때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동구청장을 카메라 앞으로 차례로 초대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들은 다시 자리를 비웠다.

상주는 고인을 받드는 민주당 울산시당 당직자 2명이 자진해서 맡았다. 그러나 이들이 공식 분향소에 도착한 시각은 단체조문 행렬이 떠난 이후였다. “시청에서 요청도 없고 해서 망설이다가 높은 분들이 분향하신다기에 결단을 내렸지요.” 그 필요한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한 시민이 조문록을 뒤졌다. 시의원 일행은 ‘謹弔(근조)! 울산광역시의회의원 일동’이란 짧은 한 줄짜리 서명이라도 남겼지만 시장의 서명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뷰 준비하신다고 미처 못 하신 모양이지요.” 안내담당 공무원의 귀띔이 사실이라면 시장은 의전상 결례를 범했을 수도 있다.

달리, 한 시민은 조문록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고 했다. “선종(善終)에 삼가 머리 숙이며, 민주화와 남북·동서 화합의 높은 뜻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 시민은 아주 특별한 예외에 속할지 모른다. 자신을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들이 대부분 ‘색안경’을 끼고 있고, 이념적 색깔론과 지역적 색깔론이 아직도 지역사회 밑바닥에 음식찌꺼기처럼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향우회 간부진의 속 보이는 처세에서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내부적으로는 고인을 곧잘 내세우곤 하는 어느 향우회 소속 회원의 쓴 소리였다. 지론인즉, 공식 분향소의 조문록 서명에는 참여해 놓고도 정작 향우회 사무실 안팎에는 현수막 하나 내걸지 않았다는 것.

일세를 ‘행동하는 양심’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한 원로 정치인의 타계에 붙여진 ‘거목(巨木)’이니 ‘큰 별’이니 하는 요란한 수사들. 그러나 그저 빈 수레, 겉치레일 뿐 진심에서 우러난 조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취재기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꿈은 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 분향소를 찾았던 단체장이나 정치인들이 쏟아낸 발언들을 자신들이 스스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라는 우리 국민들의 한결같은 염원도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의 뜻을 받들어 민주화에 매진해 나갑시다.” (단체장)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민주주의를 완성하겠습니다.” (기초의원)

“6.15공동선언을 바탕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룹시다.” (정당인)

/ 김정주 편집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