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진형(49). 강원도 영월의 세경대학 미술치료과 교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홍익대 출신 서양화가들이 모여서 만든 ORIGIN 회화협회의 회원이다. 그가 그 모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무렵 그 모임이 가장 활발했다고 하니 화단에서는 그의 독특한 작품 성향이 많이 거론됐을 듯하다.
하지만 울산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마치 조선후기 서양 선교사를 만나는 듯 낯설고 신기하다. 우선 재료부터가 그렇다. 와인 포장지, 종이 박스, 치아구조를 드러낸 X-RAY 필름. 사람들이 쓰고 버린 재료들이다. 이 재료들은 작가가 만든 새로운 재료와 혼용된다. 이미 소통된 재료와 새로운 소통의 접점에서 작가는 잽싸게 뒤로 숨는다.
작가는 재활용품의 활용에 대해 “사람의 땟국이 묻어 있어 절대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재료”라고 설명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소통은 공감이다. 누군가가 경험했던 것에 대한 애착과 공유가 결국 소통의 길로 안내한다.
그가 소통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특이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언젠가 눈이 먼 학생에게 그림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시도였다. 시각예술인 미술을 시각장애인에게 지도하다니. 그러나 그는 학생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눈은 멀었어도 감각은 천재적이었다. 소통에 장애요인이란 없었다. 시도하지 않고는 소통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은 마치 점자를 더듬어 나가는 것 같다. 이해하기 더디고 난해하다. 불친절한 화가에게 투덜거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문득 깊은 울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6일부터 시작된 이 전시회는 신정2동 갤러리 ‘창’에서 22일까지 계속된다. / 이상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