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 칼럼으로 선바위 일원의 정비를 줄기차게 촉구했던 울산제일일보는 울산시의 발표에 때맞추어 6월 초 ‘늦은 감이 없지 않은 입암공원 조성’이란 제목의 사설을 싣고 격려를 보냈다. <선바위 주변 경관이 정비돼 울산의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된다고 한다. 가칭 ‘입암공원’ 일원에 4가지 테마 공간을 꾸며 선바위 부근을 풍류와 멋이 어우러지는 공원으로 가꾼다는 계획이다. …>
‘옛 풍류가 되살아나고 멋이 넘치는 공간!’ 가슴 설레는 구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공원 이름을 굳이 ‘입암(立岩)’으로 포장한 데는 할 말이 있다. 인터넷에 ‘입암’이란 한자 이름은 ‘선바위’란 순 우리말 이름과 함께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그 뜻은 ‘우뚝 선 바위’ 즉 ‘선바위’의 한자식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도, 울산시의 공식 명칭에서 ‘선바위’는 ‘입암’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그 이유는?
필시 옛 유학자들의 한문(漢文) 숭상 태도, 지금 공무원들의 권위의식 또는 정서지수(情緖指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참고로, 울주군 출신 강길부 의원이 펴낸 <땅이름 울산사랑>의 <범서읍 입암리> 편에 ‘입암’이라 부른 시기는 조선조 정조 때다. 그 무렵 일반 백성들은 그냥 편하게 ‘선바위’라 불렀을 터이지만 공식 명칭에선 후순위로 밀려난다. 공원 이름을 순 우리말을 붙여 ‘선바위공원’이라 했다면 훨씬 더 운치 있고 멋있을 것 아닌가!
‘선바위’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입암’은 발음이 어렵다. 첫 글자의 비읍(ㅂ) 받침이 시각적인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또 ‘입암(立岩)’이란 말에는 선사시대 제의(際儀)의 산물인 ‘선돌(立石)’이란 뜻도 있다. 하지만, 구영리 태화강물 속의 임압은 엄연히 선돌이 아닌 선바위다. 또 그 이미지는 선돌(立石)이 아니라 차라리 남근석(男根石)에 가깝다.
땅이름, ‘곳(所)이름’을 순 우리말로 지어 주목받는 예는 적지 않다. APEC 정상회의 장소였던 부산 해운대 동백섬 자락의 명소 이름 ‘누리마루’가 그 본보기다. 꽃 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고양시는 그보다 한 수 위다. (재)고양문화재단이 순수한 우리말을 섞어 지은 ‘곳 이름’들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두 군데 공연·전시 공간의 이름은 ‘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다. 아람누리 안에는 디지털실험극장 ‘새라새극장’과 오페라하우스 ‘아람극장’을 비롯해 ‘아람음악당’, ‘아람마슬’(=아람마을), ‘아람미술관’, ‘아람누리갤러리’에 ‘노루목야외극장’까지 있다. 어울림누리 안에는 ‘어울림극장’과 ‘별모래극장’이 있고 “꽃매야외극장’도 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천지다.
그런 노력은 다른 도시에도 번져 간다. 얼마 전 서울 서초구에서는 ‘우리말 바로잡기 사업’을 시작했다. 시인, 전직 교사, 문학 전공자나 경력자 30여명으로 구성된 ‘우리말 지킴이’들이 공공시설에서 잘못된 우리말 표현을 골라내 바르게 쓰기 권유에 나선 것.
고양시를 꽃보다 더 아름답게 만든 공(功)은, 참으로 우리말을 아끼고 가다듬으려는 몇몇 뜻 있는 이들에게 먼저 돌려야 할 것이다. 차제에, ‘생태문화도시’를 대내외에 널리 알려 도시 이미지와 도시 브랜드를 높이려는 울산시가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에도 눈길을 돌리면 어떨까? 지금이라도 결코 늦지 않다. 그 실천의 하나로 ‘입암공원’을 ‘선바위공원’으로 바꾸어 부르는 일부터 시작해 보기를 권유한다.
/ 김정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