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장날은 잡화화엄장
언양 장날은 잡화화엄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3.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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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월이 왔다. 달구리(=닭이 울 무렵, 이른 새벽)가 빨라지고, 해 뜨는 시각도 빨라졌다. 떼까마귀와 백로류가 잠자리를 떠나는 시각도 빨라졌다. 봄 햇살이 추위를 몰아내니 괜히 마음이 들뜬다.

미물도 예외가 아니다. 딱새의 경쾌한 울음소리는 봄소식이다. 호랑지빠귀의 으스스한 귀곡성도 들린다. 오목눈이는 며칠간 들락거리더니 튼튼한 알집이 완성됐다. 국가정원의 꿩은 스스로 울고 있다. 쇠물닭의 콧등도 점차 붉어진다. 붉은부리갈매기의 부리는 조금씩 퇴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봄을 느끼고, 남성은 가을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고래희(古來稀) 원정(圓頂)이라서 그런지 가을뿐 아니라 오가는 봄이 슬프다. 그래서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때맞추어 대전의 벗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난 대뜸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KTX 울산역이라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생각이 나서 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얼마 있다가 집으로 찾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차를 나누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나게 3월 첫 주 언양장을 찾았다. 언양장은 필자가 이따금 찾는 오일장이다. 언양장은 물건을 팔고 사는 것이 목적이지만, 더불어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다. 장터에 들어섰다. 귀와 눈은 듣고 보느라고 즐겁고 코는 냄새에 신났다.

먼저 사철나무 묘목과 남천 그리고 비파 묘목 두 그루와 야무지게 뿌리 싸개를 한 아담한 은목서 묘목 한그루를 샀다. 맡겨놓고 점심을 해결할양으로 소머리국밥집을 찾았다. 국밥집 주인아주머니는 분주한 장날인데도 연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인심을 가늠할 수 있는 푸짐한 소머리국밥을 받고 보니 세상을 다 얻은듯했다. 큼직하게 쓴 대파는 아직도 보글보글 끓고 있다.

장터를 한 바퀴 돌았다. 좌판에는 긴 머리를 감은 미나리가 곱게 눈웃음을 친다. 오가는 사람은 환성을 지르며, 발걸음의 웃음꽃은 뭉게구름으로 피어났다. 미나리 초록, 멍게 붉음, 전복, 손두부, 족발, 사과나무, 매실나무, 남천, 사철나무, 비파, 눌향, 포도나무, 찰떡, 미역, 파래, 도토리묵, 어묵, 대장간 등 언양장은 색과 소리 그리고 얼굴이 다양하다. 언양장은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각자는 달라도 어울리면 잡화 화엄세계다.

언양(彦陽)은 밀양(密陽), 양양(襄陽), 청양(靑陽), 고양(高陽)처럼 지명에 양(陽)자가 들어 있다. 모두 자연환경이 좋은 지역이라 인식해도 무리가 아니다. 언양은 가지산과 고헌산 등 높은 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며, 태화강의 위쪽에 있어 수해가 드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좋은 환경이다. 이는 산남수북왈양(山南水北曰陽)에 바탕에 둔다. 산을 기준으로 할 때는 따뜻한 햇볕이 드는 남쪽을 의미하고, 물을 기준으로 할 때는 햇빛이 먼저 드는 북쪽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언양은 양의 기운이 있는 곳이지만, 양의 기운을 당기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언양 사람들은 동쪽에 길게 뻗어있는 동대산의 형상을 용(龍, 말)으로 인식했다. 용이 상승하는 용트림과 말의 질주와 도약을 상징하는 비보(裨補)로 인식했다. 이것이〈학성지(1749)〉에 소개된 민속 ‘마두희(馬頭戱)’이다.

마두희에 대한 기록은 권상일(權相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1679∼1759)의 〈청대일기(淸臺日記)〉에 먼저 등장한다. 1736년 5월 4일자에 “언양 현감이 들렀다. (후략)”는 기록이 있다. 5월 5일자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 고을 옛 규례에 마두줄(馬頭?)이라 이름을 붙이고, 호장(戶長)이 미리 볏짚과 칡덩굴을 부근의 각 면에서 수합하여 밧줄을 만들고, 이날 동·서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여 승부를 겨룬 다음, 그것으로 태화진(太和津) 배의 닻줄을 만든다,”

3월의 언양장(2·7)은 그야말로 다양한 꽃이 함께하여 마치 화엄의 세계로 장식되는 잡화화엄장(雜花華嚴場)이다. 어떤 이름보다 품격이 있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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