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선진 자율예방 체제를 위한 노력
[안전파수꾼]선진 자율예방 체제를 위한 노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3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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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년 말 ‘처벌 중심에서 자율예방 체제로의 전환’이란 제목으로 고용노동부의 새로운 중대재해 정책을 안전관리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적절한 정책이라며 환영한 바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사, 정치권 및 언론 분야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선진 자율예방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우선, 정부는 사업장에서 자율예방 체제가 정착할 수 있도록 현재의 규제 중심의 안전관리 체제를 과감하게 자율 위험관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오랜 세월 동안 처벌·규제 중심의 안전관리에 익숙해진 규제기관이나 기업 양측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 될 것이다. 영국은 2006년 규제개혁령에 입각하여 위험성평가에 기반한 자율적 소방법을 제정하여 시행했다. 새로운 위험기반 소방법은 지켜야 할 기준을 최소화하는 대신 기업이 화재와 관련된 위험을 스스로 평가하여 소방시설을 설치하고 위험관리를 책임지게 했다.

정부는 거주 형태별로 화재 위험성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세부 지침서를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자율적으로 더 위험한 곳에 꼭 필요한 화재방호 설비를 설치하고 운영함으로써 과다한 규제를 피하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위험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허술한 위험성평가와 위험관리로 인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게 되면 기업이 책임을 지게 했다. 정부는 새로운 안전관리 철학을 확립하고 발표한 전략이 구체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법체제를 바꾸어야 하며, 자율안전관리에 관한 지침서를 개발하고 담당자들을 교육해야 한다.

이제 기업이 할 일을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월드클래스 수준의 기업이 탄생했다. 그러나 어느 기업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독자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확립한 곳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생산기술은 발전시켜 왔으나 안전관리 기술은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산재사고 사망자 통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재사고 사망자 비율은 근로자 만명당 0.43명으로 OECD 평균 비율 0.29를 크게 상회한다.

기업은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함은 물론 자체적으로 위험을 발견·평가하고 이를 실현 가능한 최저 수준의 위험으로 낮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위험기반 자율안전관리 시스템을 확립하고,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하며, 위험경감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자율적 위험관리 체제에서는 규제가 완화되는 대신, 사고에 대한 책임이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율예방 체제가 확립되기 위해서 노조가 할 일은 무엇인가. 작업위험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노조의 책임이 될 수 있다. 노조는 적극적으로 자율예방 체제가 연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학계는 위험성평가 연구 기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선진 자율예방 체제의 운영에 필요한 현장 소요기술을 파악하여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위험기반 안전관리나 리스크 거버넌스와 관련한 학과를 만들거나 연구센터를 만들어서 관련 연구 및 인적 자원을 육성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원칙대로 안전사고 보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왜 안전사고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분석과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에 선진 자율예방 체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때까지, 언론은 당분간 비판을 유보하고 안전문화 확산의 견인 역할을 수행하길 바란다. 해외 선진 자율안전관리 우수사업장을 방문하여 성공 스토리를 취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은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족이며 이웃이다. 이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더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책무다. 그러기에 국민 개개인이 안전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김원국 울산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 리스크엔지니어링서비스 기술이사, 한국/미국 소방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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