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의 이야기 속으로] ‘대동댁 잔치’ 3화
[박경만의 이야기 속으로] ‘대동댁 잔치’ 3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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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가 지나서야 금천댁 앞 도롯가에 검은색 코티나 차가 왔다. 땅딸막하지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린다. 조수석에서는 길 안내를 맡은 희야 고모가 내린다. 뒤에서 분홍빛 찬란한 한복을 입은 뽀얀 얼굴의 시어머니 되실 분, 숙녀 모습의 신랑 여동생, 그리고 신랑 삼촌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린다. 모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낯선 시골 풍경을 눈에 담는다.

멀리서 온 사돈을 희야의 부모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두 집안 일행이 서둘러 청보리논 오솔길로 내려온다. 신랑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청보리를 연신 손으로 쓰다듬듯이 만져보고 또 보리 내음을 맡으며 좋아라 한다. 드디어 삽짝에 들어선다. 사람들이 서울서 온 혼주를 보려고 가까이 간다. 그들은 뭔가 다르고 세련되어 보인다. 화창한 봄날 햇빛에 신랑 가족의 얼굴은 더 희게 보이고 의상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동네 사람 모두가 서울이란 것을 이 사람들을 통하여 헤아려본다.

천막 아래 모란꽃을 수놓은 병풍이 펼쳐져 있다. 그 앞 혼례상에 과일, 그릇에 수북이 담긴 흰쌀, 대나무 잎들을 꽂아 청실홍실을 걸친 나무통, 흰쌀 바로 옆에 각각 청색 보와 홍색 보로 싼 윤기 나는 수탉과 암탉이 올려져 있다. 상 아래에도 술잔이 각각 놓인 두 개의 작은 상이 양쪽으로 있다. 희끗희끗한 긴 수염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가 나와 뭐라 뭐라 말씀하신다. 푸른 두루마기에 검은 혁대를 하고 검고 번쩍이는 모자를 쓴 신랑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온다. 그 옆에 한 아주머니가 파란 보자기로 싼 나무새를 두 마리 가져와서 희야 엄마 앞에 놓인 작은 상에 올려놓는다. 신랑이 희야 엄마에게 절을 한다. 나무새가 놓인 작은 상을 큰 상 아래 중앙에 놓는다.

할아버지의 다음 큰 소리에 젊은이들이 꽃가마를 메고 들어온다. 한복을 입은 두 젊은 아낙이 꽃가마 문을 양쪽에서 연다. 보석과 꽃으로 치장한 검고 작은 족두리가 살짝 나오더니 비녀 양쪽으로 금박을 입힌 큰 댕기가 보인다. 가마에서 나오려고 숙였던 머리를 드는 찰나, 신부는 연분홍 넓은 소매 위로 매화를 수놓은 넓고 하얀 천을 들어서 얼굴을 가린다. 신부의 허리를 잘록하게 묶은 색동 줄이 유난히 반짝인다. 치마 끝에서 하얀 고무신이 보일 듯 말 듯 한다. 조금 떨어져 서 있던 신랑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부채를 비스듬히 돌리면서 신부를 본다.

“마-. 부채 내라가 보소.” 고성댁이 신랑을 보고 소리치자 마당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왕이면 색시 얼굴도 함 보자.” 모든 사람들의 궁금증을 고성댁이 대변한다. 여기저기서 신부 얼굴이 보고 싶다고 이구동성이다. 신부가 하얀 매화 천을 눈 밑으로 살짝 내린다. 신랑이 부채를 제치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신부를 자세히 보려 한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신부가 매화 천을 도로 올려버린다. “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신랑 신부가 혼례상을 마주 보고 섰다. 대야에 담긴 물에 각자 손을 씻는다. 신부가 신랑에게 절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신랑 신부만 쳐다보고 있다. 대동댁 마당이 조용하다. 할아버지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신랑이 절을 하려고 꿇어 엎드리자 모자가 앞으로 툭 떨어진다. 모자를 잡으려고 손을 앞으로 내밀자 모자가 손에 받혀 큰 상 밑으로 굴러버린다. 엉겁결에 반쯤 일어나 모자를 주우러 앞으로 나가자 큰 상에 머리가 부딪친다. 순간 동네 사람들 모두가 박장대소를 한다. 그 소리에 놀란 수탉이 퍼덕거리자 암탉도 놀라 퍼덕거린다. 옆에 놓인 쌀이 튀고 과일도 상 밑으로 구른다. 신랑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한다. 소란에 신부가 얼굴을 가린 소매를 내리자 발그레 볼 붉힌 달덩이 고운 얼굴이 보인다.

송촌댁이 나서서 정리를 한다. 자리가 정리되자 신랑 신부가 술을 한 잔씩 마신다. 할아버지가 신랑 신부에게 뭐라 다짐을 받는다. 신랑 신부가 사람들에게 큰절을 올린다. 신랑이 신부를 업고 마당을 돈다. 고성댁이 꽹과리를 치며 나선다. 동네 사람들이 장고, 북, 징, 소고를 들고 함께 마당을 돈다. 동네 아낙들이 그 뒤를 돌며 어깨춤을 춘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흥을 돋운다. 나도 엄마 손을 잡고 흥 속으로 들어간다.

꽹, 꽤괘괭꽹, 꽹, 꽤괘괭꽹, 꽹, 꽤괘괭꽹,/ 징, 꽤괘괭꽹, 징, 꽤괘괭꽹, 징, 꽤괘괭꽹./ 징. 징. 징. 징. 꽹, 꽤괘괭꽹, 징. 징. 징. 징. 꽹, 꽤괘괭꽹……. < 끝 >

박경만 작가, 한국농업경영인울산시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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