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내봉수대의 역사적 가치
천내봉수대의 역사적 가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2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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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봉수(烽燧)는 지금처럼 전화나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봉수대는 해안의 동태와 왜군의 출몰과 같은 긴급 상황을 중앙에 전달하기 위해 사방이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되었고,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상황을 알렸다. 봉수제도는 고종 31년(1894), 우리나라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되었다.

지난 1월 17일 문화재청이 조선 후기 군사 통신시설인 ‘제2로 직봉(부산 응봉∼서울 목멱산’ 노선상에 있는 봉수 유적 44개 중 14개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2로 직봉’으로 지정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울산에서는 언양 부로산봉수 유적이 ‘제2로 직봉’의 한 곳으로 지정되었다. ‘직봉(直烽)’이란 조선 시대 전국 봉수망을 연결하던 중요 봉화대로, 각 변방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5간선로상의 봉수망을 가리킨다.

울산의 봉수대는 5개가 있다. 그중 동구에 있는 봉수대는 주전봉수대(=남목봉수대)와 천내봉수대 2곳이다. 염포산 천내봉수대(川內烽燧臺, 동구 화정동)는 해발 120m에서 울산만(蔚山灣) 입구를 지키던 중요한 군사시설로, 1998년 10월 1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된 유적이다. 이 봉수대는 가리산봉수대의 봉화(烽火)를 남목봉수대로 전해주던 연변봉수(沿邊烽燧)의 하나였다. 직선거리로 따져 천내봉수대는 남서쪽 가리산봉수대와는 약 3.71㎞, 북동쪽 남목봉수대(=주전봉수대)와는 약 6.54㎞ 거리에 있다. 남아 있는 연대(煙臺)의 규모는 윗부분 지름이 약 5m이고, 하단 둘레와 높이는 각각 55m, 2m가량으로 추정된다.

몇 해 전 울산대교 전망대에 올랐다가 오랜만에 천내봉수대로 가 보았다. 입구에 우뚝 선 문을 들어서면 돌계단 길이 이어진다. 길 주변으로는 키 낮은 등을 달아 놓아 밤에도 산책하기 좋을 것 같았다. 봉수대는 야트막한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 돌탑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그 순간 봉수대가 낯설게 다가왔다. 잘못 찾아온 조상 묘 같은 느낌이 들어 안내판과 예전에 봤던 모습을 번갈아 떠올려보기도 했다.

천내봉수대 추정도(推定圖)를 보니 중간에 연통이 있고 연대, 호, 목익(木?=끝이 뾰족한 방어용 나무 말뚝)과 봉수군 주거지, 고사가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봉수대로 보였다. 또 많은 양의 방호용 투석(投石) 도구가 채집된 것으로 미루어 군사요새지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봉수군(烽燧軍)이 거주했던 주거지 두 채도 그려져 있었다. 안내판들이 “이곳이 봉수대 자리”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안내판에 담긴 발굴조사 당시의 사진으로 그때의 모습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염포산은 방어·일산·화정·대송·전하동과 남목1·2동 주민들의 휴식처이다. 또한, 일산 바닷가와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장생포, 태화강과 울산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만나는 봉수대가 든든하고 자리도 넓어 보기엔 좋았지만, 천내봉수대만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잘 살렸는지는 되짚어 봐야 할 일이다. 발굴의 의미는 잊은 채 산책의 편의성에 더 치중한 단장은 아니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천내봉수대는 ‘제2로 직봉’ 노선상에 놓여있다. 간비오봉수대에서 출발하는 노선의 7번째 봉수로, 남서쪽 가리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동쪽 주전봉수대로 긴급 상황을 알리며 울산만을 지켰던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그런 봉수대가 왜 ‘제2로 직봉’ 사적에는 들지 못했을까?

천내봉수대는 입지적으로 조선 시대 주요 교통·통신망의 한 축이었고, 거화(擧火)시설과 생활시설이 분리된 가운데 방호용 투석도구와 봉수군 주거지까지 발견된 점으로 보아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다. 발굴조사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복원을 추진했더라면 어땠을까? 지나친 편의성 위주의 현대식 복원이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원인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앞으로는 천내봉수대를 치밀한 고증을 거쳐 올바로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조선 시대 국방의 한 축을 떠맡았던 중요 사적으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김뱅상 시인, 현대중공업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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