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기획특집]“천년의 빛깔 물들이는 ‘쪽물 염색’은 숙명”
[창간 15주년 기획특집]“천년의 빛깔 물들이는 ‘쪽물 염색’은 숙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2.0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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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과 ‘문화수도 전주’가 맞손 잡으면
⑺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정관채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정관채 염색장.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정관채 염색장.

 

◇쪽 염색 작업

‘염색장’이란 천연염료로 옷감을 물들이는 장인을 말한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는 염색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장인이 있었을 정도로 염색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옷감을 물들이는 데 사용하는 천연염료는 식물, 광물, 동물 등에서 채취한 원료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가공을 통해 만든 염료를 사용한다. 염색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쪽 염색은 ‘쪽’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가지고 옷감 등을 물들이는 것으로 염색과정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우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천연염색은 근대화 이후 급속한 화학염료의 도입으로 전통이 끊겼으나 1970년대 이후 일부 장인들의 노력으로 그 맥을 살릴 수 있었다.

나주 지역의 쪽 염색 작업과정은 8월 초순경 60~70cm 정도 자란 쪽을 베어 항아리에 넣고 삭힌다. 이틀 뒤 쪽물에 굴 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넣으면 색소 앙금이 가라앉으면서 침전 쪽이 생긴다. 침전 쪽에 잿물을 넣어 7~10일 동안 발효시킨다. 이때 색소와 석회가 분리되어 거품이 생기는데, 이 과정이 꽃물 만들기라 하는 염료 물감으로 탄생하게 된다. 쪽물이 준비되면 염색할 천을 삶아 불순물을 제거한다. 쪽물을 넣고 3분에서 5분 뒤 꺼낸다. 이때 색깔은 공기 중에서 황록색이 청색으로 변하는데, 쪽물이 산소와 접촉하면서 불용성이 되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일대에서 무명 짜는 일을 ‘샛골나이’라고 한다. 샛골나이에서 ‘샛골’은 동당리의 마을 이름이고,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나주 샛골나이의 무명은 나주세목, 샛골목이라고 불린다. 무명베의 대명사인 샛골나이는 한산 세모시, 곡성의 고운 삼베인 돌실나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뛰어난 길쌈 전통으로 손꼽힌다.

국가무형문화재 정관채 염색장이 만든 작품.
 

◇쪽씨 하나가 이어준 쪽물 염색 인연

무명길쌈과 쪽물 염색이 같이 유명했던 다시면 출신인 정관채는 천과 염색이라는 두 가지 인연을 갖고 태어난 셈이다. 실제로 그의 외가는 샛골나이 전통을 이어가는 집안이다. 지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샛골나이 기능보유자 노진남 씨는 최씨 집안에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길쌈을 본격적으로 배웠는데, 정관채의 어머니가 바로 같은 최씨 집안 출신이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의 베틀 밑에서 잠들던 기억과 할머니가 덮어주던 무거운 쪽 이불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후 쪽물 염색을 더는 볼 수 없었고, 무명베의 샛골나이와 곡성의 삼베 돌실나이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무형문화재이다. 그러던 중 1978년 목포대학교 미술대학교 1학년이었던 정관채는 염색을 배우던 박복규 교수에게 쪽씨 하나를 건네받는다. 쪽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을 때였다.

“그 쪽씨는 박 선생이 당시 민속문화 복원에 앞장섰던 예용해 선생께 얻은 것이다. 예용해 선생은 어렵게 구한 쪽씨를 박 선생께 건네며, 우리 땅에서 사라진 쪽을 되살릴 곳은 나주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귀하디귀한 쪽씨를 받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야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쪽 농사를 짓고 쪽물을 들이며 살아온 어머니와 할머니의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1984년 정관채는 쪽빛으로 곱게 물들인 무명천을 들고 박복규 교수와 함께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던 예용해 선생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왔다.

“예 선생님은 쪽빛 무명베를 보시더니 ‘와, 쪽빛이 이런 색이로구나!’하고 감탄하셨어요.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장하다.’고 격려도 해주셨고요.” 쪽 재배와 쪽물 염색이라는 난관을 처음 돌파한 젊은이에게 이 성공은 달콤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준다. 누군가는 해야 할 전통을 되살리는 일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에게 떨어졌고, 그는 그 일을 반쯤은 벅찬 가슴으로 또 반쯤은 소명의식으로 받아들였다.

물들인 천이 청록과 녹색으로 산화되고 있는 과정.
물들인 천이 청록과 녹색으로 산화되고 있는 과정.

 

◇정관채, ‘쪽물 전도사’가 되기까지

그의 아내는 은행원이었다. 교사와 은행원이라는 안정되고 고상한 직업을 가진 젊은 부부가 쪽물에 매달리자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지만, 그의 어머니 최정님 씨만은 늘 그를 지지하고 도와줬다. “어머니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라도 쪽물 염색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는, 돈이 안 되는 이 일을 내가 아니면 누가 할까 하는 의무감이 더 강했다.”

한때 끊겼던 쪽물 염색을 길이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정관채를 ‘쪽물 전도사’로 만들었다. 누구든 가르쳐달라는 이가 있으면 그는 서슴지 않고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고 쪽씨를 나눠줬다. 혼자서 묵묵히 해오던 쪽물과 천연 염색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화학염료로 청색을 내는 일은 힘들다. 청색을 내기 위해 독성이 강한 염료를 쓰는 것도 그만큼 청색은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두꺼운 청바지 천을 물들이는 데는 염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 예전에 동두천과 포천, 청계천에서 만들던 청바지 공장을 시화공단으로 옮겼다가 시화호까지 오염된 적이 있다. 지금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청바지를 염색하는데, 지구 어디에서 하든 청색 화학염료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가장 내고 싶은 빛깔은 옥색과 하늘색 사이의 연한 빛깔이다. 연한 색을 내기 위해 생쪽을 찧어 그 즙으로 물을 들이는데, 이렇게 하면 물이 잘 빠지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되풀이해 물을 들여야 한다. 색이 연하면서도 색깔이 오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장인 정관채의 전공은 쪽빛이 되었다. 쪽빛이 전공이다. 그는 쪽물 염색으로 유명했던 전남 영산강변의 천연염색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도 쪽물 염색의 전통을 이은 그는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에 오름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쪽물장이가 됐다.

“쪽빛은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겨졌다. 고려 시대에는 쪽빛을 천년의 빛깔이라 하였고 고품격 사경을 만들 때는 감지를 사용했는데 그 감색도 쪽빛이었다. 보물 1412호로 지정된 ‘감지금니대방관불화엄경’이 잘 말해주고 있다.” 감지는 한지에 여러 차례 쪽물을 들여 만든 전통 종이로 국보와 보물로 10여 점이 지정되어 있으며, 변치 않는 신비한 종이이다. 조계종 종정인 성파스님은 명맥이 끊겼던 종이 감지를 2004년에 재현했다. 2013년부터 통도사 서운암에서 열리는 염색축제에 쪽물장인 정관채도 참여하고 있다. 2021년 아름지기재단에서 열린 독일 브랜드 마흐바흐 100주년 기념 전통문화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2022년 덴마크 프리츠한츠 150주년 기념 코리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 에그 체어에 전통 조각보처럼 자르고 이어 붙이기를 했다. 쪽 염색을 한 무명천이 북유럽을 대표하는 의자 디자인과 결합했다. 무형문화기술과 가구 디자인의 협업은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정관채 염색장이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egg 체어에 쪽빛 염색 작업을 하는 모습.
정관채 염색장이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egg 체어에 쪽빛 염색 작업을 하는 모습.

 

◇과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쪽빛

두 자제 중 둘째인 정찬희 작가는 나주 근거리 도시인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지금 몰두하는 것은 천연 색소를 연구하는 일이다. “알면 알수록 이 일이 가치가 있음을 깨달아요. 예전에는 청바지도 쪽 염료로 물들였어요. 그런데 쪽에서 뽑아낸 색소로 푸른색 합성염료 인디고(Indigo)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화학염색이 대중화됐죠. 저는 어떻게 하면 쪽 염료와 같은 천연염료를 표준화하고 계량화해서 대량생산할 수 있을지, 현대화할 수 있을지 연구합니다.” 3년 전에 쪽 염색을 활용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제품을 선보이는 ‘컬쳐앤조이(Culture&Joy)’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박사 과정에 있기에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진 못하지만,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책상 위 공간을 분할해 사용할 수 있는 디바이더와 테이블 매트를 만들었고, 전등갓이나 모빌 같은 상품을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김동철 ㈜온고 대표이사

前 한국전통문화전당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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