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보다 못한’
‘돼지우리보다 못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1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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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다시 들었다. 참 오랜만이다. 귀가 따가운 탓도 있다. 사방이 온통 짖는 소리로 가득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짐승 소리가 사람 입에서 나오다니…. 그렇다고 가면을 쓴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가면무도회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착각에 빠져든다. 가면으로 가리고 허튼소리나 한다고 쓴소리하는 사람이 있다. 철판을 깔았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2016년 7월, 한 중앙지 기자 앞에서 “민중은 개돼지”라고 막말하던 ‘고시 엘리트’(교육부 정책기획관, 3급)가 있었다. 그는 여론 매를 맞고 ‘1계급 강등’의 쓴잔을 마시지만, 그가 내뱉은 비속어 ‘개돼지’는 지금도 잊을만하면 고개를 치켜든다.

지난달 하순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혐의는 ‘막말로 인한 아동학대’. 학부모가 공개한 5학년 어린이들의 진술서는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너희들보고 개XX라고 한 이유는 개가 요즘 사람보다 더 대접받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이러고도 학생이냐, 농사나 지어라.” “부모는 너희를 개돼지, 괴물로 알고 키운 것이다.” “1학년보다 공부 못하는 XX들.”….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온 말이 ‘개돼지’다. 시쳇말로 ‘기도 안 차는’ 말이다.

‘개돼지’란 말은 일찌감치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신라 눌지 마립간 대에 박제상이 왜(倭·일본)에 붙잡힌 왕자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대신 붙잡혔을 때 왜왕이 이렇게 달랜다. “내 신하가 되면 봐주겠다. 상도 내리겠다” 그러자 박제상이 이렇게 맞받는다.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寧爲?林之犬? 不爲倭國之臣子).”

‘개돼지’란 말은 2015년 11월에 개봉된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로도 유명하다. 궁금해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보니 뜻이 두 가지다. 첫째는 ‘개와 돼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둘째는 ‘미련하고 못난 사람 또는 고약하고 막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부정적 의미의 ‘멸칭(蔑稱)’이란 뜻풀이가 따라붙는다. 입에 올려도 될 만큼 고상하거나 점잖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글은 ‘돼지 얘기’ 두 가지로 마무리하겠다.

“대구 이슬람사원 공사장 인근에 고사를 지낼 때 올리는 돼지머리가 하나 더 늘어나면서 대현동 일부 주민과 건축주 측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9일 대구발 연합뉴스 첫머리다. ‘끝나지 않는 대구 이슬람사원 갈등’이란 제목이 달렸고 이슬람사원 건축 반대자의 행위임이 드러났다. 이슬람교에서 ‘돼지’는 율법에 못 박을 정도로 극도의 혐오 동물이다.

또 하나, 연합뉴스가 소개한 ‘돼지의 성공 처세술’은 ‘돼지 예찬론’에 가깝다. “돼지가 적(敵)이 돼 서로 싸워도 바로 화해하고 중재자가 개입해 싸움을 말리는 등 높은 사회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 연구진이 집돼지가 서로 싸운 뒤 갈등을 푸는 과정을 관찰·분석해서 얻은 결과라고 했다. 동물학 저널 <동물 인지>(Animal Cognition)에 실린 학술논문이다.

이 뉴스는 이렇게 이어진다. “특히 박치기나 밀기, 물기, 들어 올리기와 같은 공격적 행동이 발생할 때는 매번 3분가량 이어지는 행동을 추가 관찰했다. 그 결과, 공격적 행동을 하거나 공격을 당한 돼지들은 싸움이 끝난 뒤 서로 코를 맞대거나 몸이 닿은 채 앉고 상대방 몸에 머리를 기대고 쉬는 등의 화해적 행동을 보였다.”

이쯤 되면, “사람이 돼지보다 더 나을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판’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우리네 정치판을 보면 ‘돼지우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한 번 해보는 소리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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