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
적반하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0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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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훈육과 학대의 경계선이 모호하다고 한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훈육으로 생각하고 누구는 학대로 받아 들인다. 사안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학교와 가정, 사회전반에서 훈육과 학대는 뒤섞여 있다.

최근 전교조가 내놓은 설문조사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팎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할 때, 전체 교사의 90% 이상이 ‘나도 아동학대로 신고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는 답변이다. 여기에는 학생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로부터의 압박감도 포함됐다. 아동학대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기분 나쁠 때 신고된다. 그럴 수도 있지란 생각이 아닌 ‘금쪽 같은 내 새끼에게 그러면 안 되지’로 느꼈을 때 나타난다.

한 초등교사로부터 억울했단 소리를 들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가 한 문제를 틀렸다. 실수로 틀릴 수 있으니, 괜찮다고 토닥였는데 아동학대로 신고됐다. 특히 토닥이기 위해 먼저 “토닥여도 될까?”라고 묻고 토닥였다. 여선생님이 여학생에게 한 행위였다. 이게 아동학대 신고가 될 수 있었을까?

학교에선 별의별 이유로 ‘아동학대’가 신고된다. 아무 의미 없이 쳐다봤다고, 대화에 끼워주지 않았다고 신고된다. 때림과 폭언이 아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그래서 교사 90%가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법하다. 최근엔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기도 예사다. 교사로서의 자긍심이 사라진 자리에 자괴감이 들어서고 있다.

한 교사는 “서서히 교사가 아닌 직업인이 되간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웃으며 학생들을 대하지만 마음 속에서부터 벽을 쌓고 거짓으로 웃음을 짓는다는 것이다. 수업에 집중 안하고 떠들든말든, 잠을 자든말든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이번 칼럼을 쓰게한 계기가 됐다.

사회는 교권의 보호와 강화를 말하고 있다. 교권이 보호됐을 때 교단에서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학생들로부터 또는 학부모로부터 별 시답잖은 이유로 받는 아동학대 신고에서 자유롭고, 아주 심각한 폭언과 폭행에 대해서는 처벌수위를 높여 경각심을 주자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는 현상에 휘둘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교권 보호와 강화는 ‘누구로부터 혹은 무엇으로부터’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교권 보호와 강화는 교사를 또는 교단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이지만 사실은 학생들로부터 또는 학부모들로부터가 생략됐다. 교권은 학생과 따로 떼어놀 수 없을 진데, 무엇으로부터 보호와 강화를 한다는 것인지를 따지면 어불성설이다.

현상은 학교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이다. 아동학대 신고도, 교사들이 폭언과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게 현상이다. 이 현상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을 시덥잖은 이유의 아동학대 신고처럼 말이다. 현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이를 교사가 늦게 받아들이고 있다. 변화 대처에 늦으니 현실에 안주할 수 밖에 없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학생과 학부모 탓을 하고 있으니 ‘적반하장’이다.

학생인권이 신장하고 학부모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야박한 말이겠지만 갈수록 기대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기대에, 이 현상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교사가 변화해야 한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침해 한다고 하는데, 학생인권과 교권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다. 학생인권이 보호될 때 교권도 함께 보호된다. 이 사실을 교사만 모르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정인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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