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이 나를 키웠기에
당신의 사랑이 나를 키웠기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0.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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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하루, 부대끼는 마음을 가득 안고 집에 도착하여 털썩 앉고서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랐고 전화번호부를 검색했고 역시나 마음이 가장 끌리는 고등학교 선생님께 전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그리웠던 목소리가 반겨주었다.

“뭐야 결혼해? 갑자기 전화하면 결혼 소식 알리는 건데”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시며 “예전에는 자주 전화하더니 요즘엔 왜 전화도 없었어, 잘 지내?”라고 안부를 건네셨다. “선생님, 항상 전화 드리고 싶었는데 먹고 사는 게 바쁘다는 게 이런 건지 매일같이 느끼게 돼요. 아직도 아등바등 적응해내는 과정의 연속이에요.”라며 투정 부리듯 기대게 되었다. 이런저런 근황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당신께서 건네신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고. 선생님이 너한테 바라는 건 그냥 네가 행복하게 지내는 거 딱 하나야. 선생님이 항상 사랑한다는 거 잊지 말고”라는 말에 나는 눈물을 애써 삼켜야 했기에 ‘선생님은 한결같이, 여전히 따뜻하다’며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온전한 행복을 바란다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음을 알기에 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대화에 머물렀다. 나를 키워냈던 것은 이러한 내리사랑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인생 선배와 사회 초년생 사이에서 받은 어른들의 일종의 내리사랑으로 나는 성장해왔다. 불확실한 미래에 흔들거렸던 시기에는 위안을, 선택에 망설이던 순간에 용기를 받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믿으며 이러한 하향적인 사랑만이 나의 세계를 키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학생들을 여럿 만나며 오히려 치사랑 또한 다른 방향으로 나를 성숙하게 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은 최근이었다.

첫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학생들과 맞이하는 수업을 고대하며, 첫 시간에 왜 이 과목을 선택했는지 포스트잇에 적게 했다. 진로, 흥미, 남는 선택 등 다양한 현실적인 내용이 보였지만 순간 나를 멈춰 세웠던 것은 선생님이 좋아서 수업을 선택했다는, 선생님이 수업을 맡아줘서 좋다는 단어들의 조합을 보았을 때였다. 찬사에 가까운 단어라 느꼈고 애정이 담긴 단어를 보면서 존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정으로 듬뿍 채워지는 일인가를 느꼈다. 어느 직업에서나 쉽게 느낄 수 없는 이토록 귀여운 존재들의 상향적인 사랑은 교사에게 꽤 뜨거운 감정을 불어 넣어준다. 종종 무기력해지고 지치는 순간에 ‘학생들을 위해서라면’이라는 일말의 작은 책임 의식이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어디선가 상처받은 나의 영혼을 치유하는 근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학생들의 치사랑은 단순히 내가 자라나는 존재인 여러분이 얼마나 좋은지, 소중한지, 말로 내뱉는 것만이 아닌, 양질의 자료에 기반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갚아 나가야 하는 것임을 안다. 사랑은 뜨거운 마음으로 불타는 형태로만 존재하지는 않으므로, 그것만이 사랑의 전부라 할 수 없기에 때로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일지라도 미움에 대한 것도, 부족함에 대한 모습도 책임으로 끌어안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상대방을 향한 진실한 사랑에 기반한 마음을 나는 책임이라 부르기로 했다.

현재의 내 모습은 나의 노력만으로 단일하게 구성되어있지 않기에,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복합한 형태로 만들어져왔기에, 이러한 사랑을 이어나가고 싶다. 조건 없이 받은 지지와 믿음으로 이루어진 내리사랑과 순수함과 귀여움이 묻어나는 치사랑의 빚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감정을 움직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책임 위에서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이 넘쳐흘러,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랑이라는 책임은 머나먼 시간까지 이어져 나갈 것이라 믿는다.

조윤이 현대청운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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