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100년, 세기의 명작전’을 만나다
‘한국미술 100년, 세기의 명작전’을 만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9.21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대표하는 명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작 100년의 시간들을 통해 미래를 여는 열쇠를 손안에 쥐어보자.

‘한국미술 100년, 세기의 명작전’은 현대중공업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현대예술관에서 열고 있는 작품전이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20세기부터 현재까지 한국미술을 혼돈, 재현, 도전, 자립, 확장 5개의 섹션으로 나누었다. 화가의 예술성과 혼이 담긴 60여 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누려보자.

□ 혼돈 - ‘변화를 시도하다’

조선말 사회는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화파의 갈등 속에서 20세기를 맞이한다. 전시관 첫 작품으로는 최초의 여성 초상화를 그린 채용신 화백의 <실명인의 영정>이다. 이 작품은 표정이 아주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김은호 <순종어진>은 순종의 얼굴은 세밀하게 그린 데 비해 옷과 손 부분이 굵고 둔하게 처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사진을 찍어 인물화를 그리는 기법이 도입되어 주름까지 세밀하게 드러냈다. 보이는 세계와 자신의 내면세계를 같이 그린 남종화 작품도 볼 수 있다.

□ 재현 - ‘사실을 그리다’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 수단으로 조선미술전람회를 연 데 이어 해방 후 우리 정부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를 열면서 국가 주도 전람회가 미술의 구심점이 됐다. 이 시기는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유화 기법과 인상주의 기법이 서구적으로 변해간다. 김경승의 <농가풍속>은 전쟁 때 그린 그림으로 평화로운 일상마저 허락되지 않던 시대상을 만나 볼 수 있고, 이응노의 <등나무>는 대문 기둥에 불조심 구호와 태평양 전쟁 포스터가 붙어있고 집 안에는 아이들과 할머니만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한옥의 풍경을 담고 있다. 마티에르 기법을 도입해 서민적 삶이 묻어나는 박수근의 <복숭아>, 이중섭의 <꽃과 노란 어린이>는 가족들과 떨어져 그리워하며 그린 작품으로, 작품 속의 꽃은 희망과 사랑의 꽃말을 담은 복사꽃이다. 39세에 요절한 후 작품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기법을 도입한 오지오의 <항구>, 여성 화가의 삶을 살아낸 천경자의 <전설>도 만날 수 있다.

□ 도전 - ‘이상을 꿈꾸다’

한국전쟁, 4·19혁명 등을 경험하며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다. 화가도 전람회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탈 국전의 목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미술운동을 시도했다. 송영수의 <순교자>, 권진규의 <비구니>는 대상의 형태를 없애고 색채와 질감이 중시되는 추상미술 시대를 열었다. 김환기의 <월광>은 산과 달 등 동양적 소재를 이용해 전통적 미의식을 현대 조형언어로 표현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이정규의 <우주>, 천병근의 <불>도 만날 수 있다.

□ 자립 - ‘정체성을 탐구하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도시는 확장되고, 사회는 대립과 충돌이 지속해서 일어나는 시기이다. 반복과 단색으로 표현한 서세옥의 <군무도>, 어린아이들의 낙서를 보고 영감을 얻은 박서보의 <묘법>은 창작의 순간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회귀>는 천자문 위의 물방울이 인상적이다. 이대원의 <농원> 변시지의 <까마귀 울 때>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한국화’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확장 - ‘경계를 없애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미술은 한반도의 물리적 영역을 벗어나 세계 미술계와 함께하기 시작한다. 탈 국경, 탈 장르, 탈 매체를 통해 모든 형식과 제한에서 벗어난 화가는 이제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세계나 사회적 견해를 드러낸다. 정종미의 <종이부인>은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고, 한지와 콩물 재료를 이용했다. 한복의 색감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액자를 벗어난 어깨선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한다. 광부 생활을 직접 했던 화가 황재형의 <탄천의 노을>은 탄광과 탄천의 계곡을 일렁이듯 실감 나게 표현했다. 이흥덕의 <지하철 사람들>은 지하철 안의 복잡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신, 동물, 사람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100년이란 긴 시간 속에는 식민지, 전쟁, 군사정부, 민주화, 세계화의 역사가 화가의 작품 속에 녹아있다. 예술은 이제 어떠한 유형과 매체에도 제한받지 않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100년의 시간을 재조명하는 귀한 전시다. 전시를 통해 에너지와 감동을 오롯이 느껴 행운의 열쇠가 머릿속으로 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뱅상 시인, 현대중공업 리포터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