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 이상길
  • 승인 2022.09.1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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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편한 거짓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그리고 일루미나티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한 장면.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한 장면.

결혼한 부부들은 많이들 공감하겠지만 결혼을 했으니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스스로 힘들 때가 가끔 있다. 허나 현실은 비교적 분명하다. 연애할 때보다는 분명 덜 행복하다. 연애할 때의 설렘과 흥분은 결혼을 하고 나면 많이 사라지기 때문. 물을 아무리 뜨겁게 끓여봐라. 안 식나. 그래도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으니 누가 물으면 “더 행복하다”고 말을 해야 한다. 그게 자신과 결혼까지 해준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배려이기도 하고.

허나 결혼 후 상대방에 대해 잃어버리게 되는 설렘과 흥분이라는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꽤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곤 한다. 왜냐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 무슨 말이냐면 등을 맞대고 같이 살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서만 점점 사라져갈 뿐, 한 명의 남자로서 혹은 한 명의 여자로서는 계속 살아있기 마련이다. 그게 인간에게 있어선 워낙 극강의 행복이다 보니. 물론 결혼을 하면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생각에 안정감이 들기도 하고, 이내 자식이 생겨 그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행복감도 있지만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와 결혼까지 결심하게 만든 설렘이나 흥분 같은 원초적인 인간 본연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인간이니까. 결코 성인군자가 아니니까.

사실 결혼이라는 게 그렇다. 그것을 색깔로 표현하면 화이트가 아닐까.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입는 하얀 드레스처럼 결혼이란 건 예식을 통해 부부 모두 순백으로 바뀌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혼 후 잠시도 한 눈 팔지 않고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보려면 얼마나 착해야 할까. 그렇다. 완전한 결혼 생활은 순백이어야 한다.

허나 대자연은 언제나 컬러풀하다. 인간도 그런 대자연의 일부이고, 해서 혼인신고를 한다고 그 전에 빨주노초파남보 등으로 컬러풀했던 사람이 갑자기 온통 순백으로만 살 순 없는 법. 물론 결혼반지의 무게감과 책임감에 순백의 비율이 많아지긴 하겠지만 가끔은 자유롭고 싶은 파랑, 또 설렘과 흥분을 원하는 분홍과 빨강, 심지어 파괴본능의 검정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그나 그녀는 배우자 앞에서 늘 순백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시끄러워지니까. 때문에 부부는 가끔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고 편한 거짓으로 살아가곤 한다. 그리고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부부인 윌리암(톰 크루즈)와 엘리스(니콜 키드만)은 그 ‘불편한 진실’을 피하지 못해 다투게 된다.

뉴욕의 젊은 의사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윌리암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엘리스와 억만장자 친구인 빅터(시드니 폴락)가 베푸는 호사스런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런데 거기서 윌리암은 두 명의 요염한 모델로부터, 엘리스는 같이 춤을 추던 돈 많은 중년의 남자로부터 각각 유혹을 받게 된다. 물론 둘 다 유혹을 뿌리치지만 다음 날 밤 엘리스는 마리화나에 취해 자신들의 결혼생활과 관련해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랬다. 7살의 예쁜 딸에 남부러울 것 없는 부부였지만 둘은 사실 권태기였고, 해서 엘리스는 남편의 진심을 듣기 위해 그를 자극한다. 그러니까 지난 밤 두 명의 요염한 모델이 유혹했을 때 흔들리지 않았냐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윌리암은 “아무렇지 않았다”고 대답해야 했고, 그게 거짓인 걸 알았던 엘리스는 자신부터 진짜를 털어놓는다. 바로 작년 여름, 같이 갔던 휴양지 호텔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한 해군장교에게서 자신은 극도의 욕정을 느꼈다고. 심지어 그가 자신을 원했으면 남편과 딸도 버렸을 거라고 말했다.

아내의 이야기에 충격 받은 윌리암은 이후 일을 핑계로 집밖으로 나서게 되고, 아내가 그 해군장교와 몸을 섞는 상상을 하며 길에서 만난 창녀의 유혹에 응하게 된다. 아니 이왕 깨져버린 아내와의 신뢰, 그는 더한 일을 스스로 찾아가게 되는데 결국 영화의 결말은 제목인 ‘아이즈 와이드 셧’처럼 아내인 엘리스가 그런 남편의 기행에 눈 한 번 질끈 깜아주면서(Eyes Wide Shut) 끝을 맺는다. 애초에 엘리스는 남편이 성인군자인 척 하는 게 싫었던 것. 그러니까 한 명의 인간으로 봤던 거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러지 못했던 걸까. 실제로도 부부였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은 이 영화를 찍고 얼마 뒤 이혼을 했다. 결혼이란 게 그런 거 같다. 결혼을 하고 나면 슬프지만 이제 배우자와의 사랑은 하거나 빠지는 게 아니라 ‘해내는’ 거라는 것. 또 그러려면 영화 속 엘리스처럼 상대방을 불완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볼 줄 알고, 가끔은 눈도 질끈 감아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 말이 아니라 이 영화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요. 하긴, 그래봤자 우주에서 보면 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참, ‘우주’까지 가게 되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 영화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것. 해서 음모론에 따르면 그 이유가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막후에서 세상을 조종하는 세력인 ‘일루미나티’의 집단의식(난교)을 폭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에 널렸으니 직접 찾아보시길. 지면은 한정돼 있는데 할 이야기는 많고. 불편하다. 불편해. 쩝. 2000년 9월 2일 개봉. 러닝타임 16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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