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사부곡(思父曲)
일그러진 사부곡(思父曲)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8.11 2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술과 신기백출 묘산으로 ‘탐관’을 혼내 주고 결국 자신의 이상향인 율도국을 찾아 떠나는 내용의 홍길동전은 어렸을적에 읽었던 책들 중 유독 기역에 남는 책이다. 홍길동전 중 유명한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란 대목은 ‘감정이입’의 백미로 꼽힐정도로 인상적이다. 그래서일까. 이 구절은 누구나 한 번쯤 부조리함을 비판할 때 인용하는 단골구절이 됐다.

홍길동전이 쓰여진 배경은 연산군 시대다. 지은이 허균(1569~1681)은 선조 때 태어난 중기사람이지만 연산군 시대의 혼란 상황을 빗대 선조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했다. 허균은 왜란을 온 몸으로 겪으며 광해군 때 졸했다. 날 새는 줄 모르도록 당파 싸움이 극심할 때 그가 내놓은 소설이 홍길동전이다. 국가가, 위정자가 제대로 기능을 못할 때 ‘민의 혁명’을 제시했다. 제도로 얽매여 놓은 기득권에서 과감히(가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진취적으로 개척하자는 의미다.

서출 태생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영향 때문이다. 성리학의 조선(후기엔 주자학)에서 국가의 통치 철학은 ‘백행의 근본을 효(孝)’에 둔 인의예지신이다. 효행을 가장 우선해야할 덕목으로 봤고, 부모를 공경하듯이 사부와 군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로 확대됐다.

이러한 영향에서 홍길동은 과감히 벗어났다. 요즘으로 치면 진보적 성향의 인사다. 비록 소설 속이지만 옛날의 사람이 그러할진데 오늘의 사람이 ‘효의 근간’을 다시 외치고 있다면 어떨까. 좀 더 과장해서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꼰대의 사회로 회귀하자고 한다면?

시절이 하수상하고 사회에서 패륜과 불법이 판치니 그럴 수 있㎢姆싶다. 그런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효에 기반’을 둔 인성교육일지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어른도 공경하고 친구 간에는 우정과 신의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존경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를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발현시킬 수 있도록 해야지 강압적이고 주입식으로 교육시켜서는 안된다. “아버지인데 왜? 아버지라고 못불러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말을 할 수 없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지난 7월 12일, 울산시의회 교육위 2차 활동에서 L모 교육위원은 울산시교육청에 ‘민주시민교육과’의 부서명을 변경하도록 건의하며, 부서명을 변경하지 않으면 예산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곧이어 중등교육과 질의에서 교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인성교육 활성화에 대한 대안마련을 주문했다. 맥락을 보면 예산심의를 빌미로 민주시민교육과를 인성교육과로 전환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L모 교육위원을 따로 찾아가 법률에 근거한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설명했다. ‘2020 개정 교육과정’에서 민주시민교육과 연계해 평화, 인성교육, 인문학적 소양교육을 내실화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민주시민교육과의 부서명 변경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홍길동과 같은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교육청이 인성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시민교육의 토대가 인성교육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산을 빌미로 인성교육을 건의하는 건 시대착오적으로 일그러진 일그러진 사부곡(思父曲)이다.

정인준 사회부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