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틀못’을 생각한다 ①
다시 ‘틀못’을 생각한다 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7.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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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언양읍(彦陽邑) 태기리(台機里)에 ‘틀못’이 있다. 아주 오랜 못으로 조선 예종 1년인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 ‘기제(機堤)’라는 표기로 등장한다. ‘언양 현내(縣內) 옹곡리(瓮谷里) 기제(機堤)가 9결(結) 17부(負)를 관개한다’고 했다. 그때는 기제가 옹곡리에 속해 있었는데 당시에도 기제를 틀못이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제의 기(機)는 훈을 빌어 틀이라는 음가를 표기한 것이 확실하지만 제(堤)는 한자말로 사용된 것이 분명한 데다 새길 때도 방축(防築)이라는 한자말에서 온 방죽이란 말로 새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틀못을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를 일이나 1700년대 초반 이전부터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선 숙종 37(1711)년인 신묘(辛卯)년에 작성된 <언양호적대장>에 ‘기지리(機池里)’라는 마을 이름이 등장한다. 기지리의 기지(機池)는 틀못을 차자표기한 것이다. 기(機)에서 훈인 틀을 빌리고, 지(池)에서 훈인 못을 빌려서 그렇게 표기했다. 틀못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어 그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 기지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부는 직동리(直洞里)에 편입되었고, 일부는 대동리(台洞里)와 통합되어 태기리(台機里)가 되었다. 대동리에서 대(台)를 취하고, 기지리에서 기(機)를 취해 대기리(台機里)가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대기리라고 부르지 않고 태기리라고 불러 지금에 이르렀다. 또 틀못을 틀못으로 부르게 됨에 따라 기제(機堤) 또한 기지제(機池堤)로 표기를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1757~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를 보면 기지제가 등장한다. ‘기지제(機池堤)는 언양 현(縣) 북쪽 15리에 있다. 둘레가 763척(尺)이고, 수심이 5척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기지(機池)로 차자표기가 되는 틀못이란 지명이 태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도처에 산재해 있다. 필자의 고향인 충남 당진(唐津)의 틀무시도 그중 하나다. 틀무시는 틀못의 지역 방언 ‘틀뭇’에 접미사 ‘이’가 붙은 형태로 한자로는 ‘기지시(機池市)’라고 표기한다. 틀무시를 그렇게 표기하는 것은 그곳에서 조선 시대부터 장(場)이 섰기 때문이다. 틀무시는 언양의 기지리(機池里)처럼 분명 그곳에 틀못이 있어 생겨난 지명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못을 확인할 길은 없고 틀무시라는 지명만 살아남아 행정명이 되었다. 당진시 송악읍(松嶽邑)에 속한 기지시리(機池市里)가 그곳이다. 지역에서 기지시리(機池市里)를 지칭할 때는 틀무시 혹은 기지시라 하고, 그곳에 서는 장을 지칭할 때는 틀무시장 혹은 기지시장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윤달이 드는 해 음력으로 삼월 초에 줄다리기를 하는데 그것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지시줄다리기’이다. 1982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틀못은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언양의 틀못에 대해 이유수 선생은 <울산지명사>에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래담을 소개하고 있다. 못 이름을 틀못이라 한 것은 틀모산 김씨가 팠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틀모산은 틀못 아래 동쪽에 형성된 태기 마을을 달리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유수 선생도 밝혔듯이 틀모산이라는 마을 이름은 틀못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틀모산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틀못이라는 못 이름이 유래된 것은 아니다. 틀모산은 틀못안의 틀못을 살려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틀못의 안쪽에 형성된 마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②로 이어짐

민긍기 창원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울산의 지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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