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로서의 언어
소프트파워로서의 언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6.2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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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지배와 언어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다. 당시 일본어 보급률은 어느 정도였을까?

구마타니 아키야스(熊谷明泰) 씨의 자료에 따르면 1942년 일본어 보급률은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으나 1944년에는 36%로 증가했다. 이는 각 지방에 민간 주도의 국어(일본어) 강습 회원 수 320만명이 포함된 결과다. 결국, 일본어 구사 능력을 갖춘 이는 1.5% 정도였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그것도 유학파, 작가 등의 지식인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언어는 물리적 권력 행사만으로는 정복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글로벌 시대에 소프트파워라는 개념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날의 군사력,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가 아니라 점차 보이지 않는 가치 즉 소프트파워로 재편되는 것이다. 소프트파워는 본래 정치적 가치, 문화, 외교정책의 3가지 자원이 그 바탕이다. 하지만, 소프트파워의 영향력은 타국에 대해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요소가 매우 높은 영향력을 지닌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브랜드파이낸스의 소프트파워 평가에서 한국은 2022년에 1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미국이었고 2위 영국, 3위 독일에 이어 4위는 중국, 5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역시 한·중·일은 소프트파워에서도 막강하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단순히 삼성, BTS 등의 인지도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어 학습 열기로 이어진다. 한국어 교육은 매우 신속하게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한국어교재 개발, 한국어능력시험 제도 마련 등의 선순환 구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어능력시험의 규모는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처음 시행한 때는 1997년이었고, 지원자는 2천692명에 불과했다. 이후 2000년 6천49명, 2010년 9만2천594명, 2015년 20만6천777명으로 급성장하더니 2019년에는 37만5천871명에 이르렀다. 한국어능력시험 시행 국가도 처음에는 한국, 일본 등 4개국이었다가 2016년에는 73개국으로 늘어났다. 2019년 기준 지원자를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20%나 되었고, 일본과 베트남이 7%씩이었다.

이는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어능력시험(JPT/JLPT)을 처음 시행한 1984년의 응시자는 7천19명이었으나 2000년 20만1천21명, 2010년 70만3천685명으로 늘어났고, 2019년에는 무려 116만8천535명에 이른다. 2019년의 국가별 해외 응시자는 중국이 38%, 한국이 11%를 차지했다. 1992년에 시작한 중국어능력시험인 한어수평고시(HSK)는 현재 112개국에서 실시하고 있고, 2017년에는 국내 시험 응시자가 16만 명이었다. 한국인 응시자가 전 세계 응시자의 70%에 달한 것이다.

여기에는 ‘유학생 유치’를 위한 언어 교육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유학생 규모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며 ‘유학생 유치 전쟁’에 돌입했다. 2020년까지 한국은 20만 명, 중국은 50만 명, 일본은 3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한·중·일 모두 목표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유학정책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일본이다. 노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의식에서 유학생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2008년 ‘유학생 30만 명 계획’을 세운 일본은 이전까지 유학생 유치에만 중점을 두던 것에서 벗어나 유학생을 일본 사회에 수용하기 위해 졸업 후 진로까지 관리한다. 국가 차원에서 출입국 절차 간소화, 취업 지원에 나서면서 유학정책을 이민정책의 하나로 전한 것이다.

중국은 2010년, 한국은 2012년에 유학생 유치 정책에 돌입한다. 한국은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에 빠진 국내 대학들의 돌파구로 유학생 유치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자리를 노린 유학생이 적지 않아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승승장구하던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행진은 코로나 시국을 맞아 움츠러들었다. 이제 조금씩 인적·물적 자원이 국가 간 이동을 시작했고 코로나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한국어 교사의 제자리 찾기도 함께 이루어지길 바란다.

박양순 울산과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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