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덕의 역사칼럼] 킨메이 천황(欽明王)은 백제 성왕이었다
[배종덕의 역사칼럼] 킨메이 천황(欽明王)은 백제 성왕이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6.1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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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명의 기마병을 거느릴 수 있는 성왕이 겨우 50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신라로 침공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성왕이 전사한 것처럼 꾸며 풍문을 퍼뜨리고는 왜의 왕실로 건너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마치 생생한 전기를 보는 것같이 성왕과 그의 아들 위덕왕에 대해 낱낱이 밝히고 있다. 위덕왕이 출가해서 승려가 되려 한 것도 『삼국사기』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기록이다.

킨메이 천황 서거 후 30대 비다쓰(敏達, 민달) 천황이 등장한다. 민달은 성왕의 아들이고 백제 위덕왕과는 형제지간이다. 『일본서기』 비다쓰 천황기에서 비다쓰는 킨메이 천황의 둘째 아들이라 얘기하고, 첫째 아들에 대한 기록이 일절 없는 것은 백제 위덕왕이 성왕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가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홍윤기 교수(동국대 철학과)는 킨메이 천황이 바로 성왕이라는 점을 누누이 지적해왔다. 홍윤기 교수는 ‘킨메이 천황=성명왕’으로 결론짓고, 당시 나라 지방 왜 왕실의 실권자가 백제인 소가노 이나메였기 때문에 성왕이 왜 왕실에서 지배 영역을 확장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소가노 이나메는 왜 조정의 최고 대신으로서 백제를 오가던 성왕을 철저하게 떠받들었고, 2명의 누이(기타시히메, 오아네노키미)를 모두 성왕의 후궁으로 입궁시켰다.

또 홍윤기 교수는 “556년 1월 혜 왕자가 백제로 귀국할 때 아매신(阿倍臣) 등 조신(朝臣)들이 거느리는 1천여 명의 군사가 호위하여 백제로 돌아가게 했다.”는 『일본서기』의 대목도 성왕이 킨메이 천황인 증거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혜 왕자는 위덕왕의 남동생, 즉 성왕의 아들로 555년 사신으로 왜국을 방문했다. 실제 고대 역사에서 호위병 1천여 명은 예사로운 규모가 아니었으며 아버지 성왕이 아들을 보내면서 많은 군사를 보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혜 왕자는 후일 백제의 28대 혜왕(惠王, 598∼599)으로 등극한다.

고대 일본 나라 땅에서는 역대 왕들이 백제 성왕의 신주를 받들고 왕실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며 모셔왔다. 794년 제50대 간무왕(재위 781∼806)이 나라 땅에 있던 왕도를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으로 옮길 때 백제 성왕의 왜 왕실 관할 사당도 새 왕도인 헤이안경으로 옮겨졌다. 그곳이 지금 교토시의 히라노 신사(平野神社)이다.

이 사실은 19세기의 저명한 국학자 반노부토모(伴信友, 1773∼1846)가 이미 “히라노 신사의 신주는 백제 성왕이다.(「蕃神考」)”라고 규명한 바 있고, 뒤이어 오늘날 수많은 사학자가 인정하는 바다. 일본 왕실 문헌(『연희식』 917 왕실 편찬)에도 백제 성왕의 신주를 모신 히라노 신사는 일본 왕실이 관장하며 제사 모시는 사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배종덕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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