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시대의 ‘파티시에’와 ‘셰프’
산업혁명 시대의 ‘파티시에’와 ‘셰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6.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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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의는 다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급료를 받거나 창업을 하여 스스로 수익을 만들고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과 ‘자아실현의 기회를 갖는 행위’가 그것이다. 이러한 정의가 개인적으로는 참 불편하다. 문장을 살펴보면, 삶을 영위하려면 먼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선순위는 개인의 만족감을 선택사항으로 담아두게 한다. 필자는 위 2가지 정의에 우선순위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유망한 직업으로 ‘파티시에(patissier)’와 ‘셰프(chef)’를 추천하고자 한다.

파티시에와 셰프는 각각 ‘제과제빵사’, ‘주방장’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가 어원인 외래어다. 굳이 외래어를 빌려온 것은 고유명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꾸고 싶어서다. 음식을 만드는 직업은 전통적으로 ‘3D 업종’으로 분류되어 왔다. 뜨거운 가열도구와 무거운 조리용기, 그리고 분초를 다투는 조리현장이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현장 적응이 어렵다 보니 진입 장벽은 낮으면서도 높은 편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이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보수가 약속되지 않아 쉽게 들어오고 빠르게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4차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조리, 제과제빵 현장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바로 ‘자동화’ 덕분이었다. 필자가 제과제빵 현장에 처음 들어갔을 땐 25Kg들이 밀가루 수십 포대를 옮겨야 했고, 그 때문에 전공을 한탄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스위치 조작 한 번으로 정확한 무게의 밀가루를 배합기로 옮길 수 있다. 다른 재료도 대부분 자동계량 투입 시스템을 갖춘 ‘자동화’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즉, 규모의 경제만 갖추면 제조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고단하게 일하던 제과제빵사와 주방장은 과거에 머물게 되었고, 파티시에와 셰프가 고부가가치 창출 직업인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여기서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위기에 놓인 직업 가운데 없어질 확률 0.89(1에 가까울수록 소멸확률이 높다.)로 나타난 지표에 대한 설명이다. 이 수치가 지목하는 제빵원은 과거의 제과제빵 기능인이지 파티시에와 셰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4차산업혁명 시대의 파티시에와 셰프는 자동화로 매우 높은 노동생산성을 갖추고 제품의 기획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조율·관리하는 직업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물론 파티시에와 셰프가 되는 데는 조건이 있다. 우선 과거의 주방장, 제과제빵 기능인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전에는 단순하게 제시된 배합비율대로 적절하게 조리하거나 배합·성형해서 구워내는 능력만 있어도 되었다면, 현재는 배합용 원재료의 특징을 생물학적·화학적 바탕에서 이해하고 변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공학적 이해도가 필요하다. 자동화 기기에서 수작업 때와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요소에 대한 이해와 활용능력을 갖춰야 한다.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를 알고 집중하도록 하는 것도 그들의 직무역량에 속하기 때문이다.

파티시에와 셰프의 소양과 적성이 까다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만든 음식이 맛있어서 스스로 만족하거나 이것을 나눌 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융합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이수하는 데는 체계적인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다만 다방면의 능력이 요구되는 만큼 그런 능력을 습득하는 일이 이전보다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육기관의 도움이다. 교육기관은 그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 커리큘럼을 제시할 수 있고 집약적인 배움을 통해 더욱 쉽게 이끌어 줄 수 있다. 배움에 정해진 시기는 없다. 이 글을 읽고 궁금증과 필요성을 느끼는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이 직업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신언환 울산과학대 호텔조리제빵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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