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다중우주’에 관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다중우주’에 관해
  • 이상길
  • 승인 2022.05.12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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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띤 기대 속에 최근 개봉한 ‘샘 레이미’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건 결국 두 가지 이유다. 바로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타노스(조슈 브롤린)의 죽음 이후 갑자기 등장한 멀티버스(다중우주)에 대한 이질감과 지난해 드라마로 출시된 <완다비전>의 관람 여부가 그것. 그러니까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다중우주’의 개념을 알아야 하고, <완다비전>도 봐야 한다. 영화라는 것도 그렇다. 아는 만큼, 노력한 만큼 보인다.

사실 마블이 15년 동안 공들여 구축한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타노스(조슈 브롤린)라는 존재는 빌런(악당)으로선 아주 탁월했다. 한 마디로 그만한 빌런이 없었던 것. 그가 지닌 어마무시한 파워도 그렇지만 독특하게도 그는 생각이 나름 매력적이었다. 다시 말해 고전적이고 틀에 박힌 악당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는데 비록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 절반을 없애려 했던 악당이지만 그가 그랬던 건 자신의 부나 명예, 혹은 권력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는 넘쳐나는 생명체로 식량 부족 등의 위기가 도래하자 인피니티 스톤(우주만물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돌들로 6개를 다 모아서 핑거스냅을 하면 소원이 이뤄짐)을 이용해 생명체 절반을 없앤 뒤 남은 절반이 잘 사는 우주를 만들고 싶어 했다. 미치긴 했지만 ‘어벤져스’팀이 맞서 싸웠던 건 결국 타노스의 그런 신념이었던 것.

그런데 타노스와의 일전까지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나름 상식적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지난 15년 동안 구축해온 세계관이 일반 대중의 상식선을 넘진 않았던 것. 우주를 쥐락펴락하려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지구방위군의 이야기야 어렸을 때부터 만화영화 등을 통해 많이 봐왔잖은가.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다중우주는 좀 다르다. 아니 우주가 여러 개라니!?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지난 15년 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흘러왔던 방향과는 결이 많이 다른데 그런 이질감으로 인해 관객들은 적잖게 어색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어색함의 본질은 ‘가벼움’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가뜩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는데 흑화한 완다(앨리자베스 올슨)를 막으려다 다중우주까지 열리면서 마블은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말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재미없게 보신 분들은 대부분 이 정서가 깔린 게 아닐는지.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사실 우주가 여러 개라는 ‘다중우주론’이나 ‘평행우주론(다중우주론의 한 개념)’은 과학계에선 이젠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까 비현실이 현실로 되어가고 있는 셈인데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사실이 아인슈타인으로 인해 밝혀지면서 반대로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입자들도 동시에 파동일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 것. 그리고 입자와는 달리 파동은 고정된 위치를 갖지 않는 만큼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가 있게 돼 결국 우주도 여러 개가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어렵다고요? 아 진짜. 좋아! 그렇다면 ‘접이식 부채’를 한번 떠올려보시길. 접이식 부채가 접혀 있을 때를 ‘입자’로, 펼쳐져 있을 때를 ‘파동’이라고 했을 때 접이식 부채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그리고 파동일 때, 즉 넓게 펼쳐졌을 땐 접혔을 때와 비슷한 모양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개가 생긴다. 미시세계에서 물질의 최소 단위인 입자가 그렇게 파동일 수 있다면 이 우주는 그런 접이식 부채가 펼쳐지듯 순간순간 분화가 이뤄져 ‘다중우주’가 생겨나게 된다. 이 말인 즉은 이번 주에 로또 복권을 살까 고민하다 푼돈마저 아까워 안 샀다면 동 시간대 다른 우주에서는 복권을 구입한 내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우주에서는 심지어 그 복권이 당첨돼 기뻐하는 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세 개의 우주에서 각기 다른 세 명의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등장하는 건 바로 이런 과학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걸 알고 봤는지에 따라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메리카(소치틀 고메즈)와 함께 여러 개의 우주를 관통할 때 잠시 등장하는 만화우주(실사가 아닌 온통 만화영화처럼 만들어진 우주)에서 어떤 사람은 전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참나. 저게 뭐야”라는 반응으로 나눠진다.

전 어땠냐고요? 당연히 전자죠. 하지만 또 모르죠. 아직도 다중우주론을 모르고 있는 다른 우주에서의 나는 영화를 보면서 “참나. 저게 뭐야”라고 했을지도.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이 영화가 조금 무거워졌죠? 훗. 2022년 5월 4일 개봉. 러닝타임 126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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