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 김태운
역발상 / 김태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1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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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머리를 처박고 헤엄을 치고 있는

문어의 문체다

배기롱 배롱 백일 동안

붉은 꽃 잔뜩 피우기 위한 물구나무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정년퇴직 후 고향인 제주도에 살면서 생활 자제가 시(詩) 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가 아는 시인 중에 가장 많은 시(詩)를 창작해 내는 김태운 시인의 디카시<역발상>을 감상합니다.

이 나무는 6월부터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8월, 9월, 10월까지 100일 넘도록 화려하게 피지요. 그래서 목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저금타는낭이라고 했고 목질이 단단하고 깨끗해서 도장을 만들 때도 써서 도장나무라고도 했지요. TV에서 보니 나무줄기를 간질이면 사람의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것처럼 위쪽이 흔들흔들 춤춘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부른다는 걸 보고 여러 번 실습해 보았는데 신기합니다.

이렇게 배롱나무, 목백일홍, 도장나무, 간지럼나무 이름도 많은 배롱나무를 김태운 시인은 “땅에 머리를 처박고 헤엄을 치고 있는/문어의 문체다” 그러고 보니 잎을 다 떨군 배롱나무는 매끈한 다리가 여러 개 얽혀있는 문어와 닮았습니다. “백일 동안/붉은 꽃 잔뜩 피우기 위한 물구나무의/처절한 몸부림이다”인 걸 상상해 내는 시인의 시선에 놀라게 됩니다.

저도 배롱나무라는 시가 있지만 부귀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라는 꽃말에 맞게 많은 시인들이 배롱나무를 노래했지만, 물구나무 선 문어의 문체로 쓴 것은 처음 봅니다. 이렇게 시를 쓴다는 것은 보편타당하게 바라다 보이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뒤집어도 보고 비틀어도 보고 물구나무 서서도 생각해 보며 새롭게 창작하고 낯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한편씩 올라오는 김태운 시인의 시를 감상할 때면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열정과 그 안에 숨어있는 뜻에 감탄할 때가 많은데 오늘은 저도 물구나무 서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시(詩) 쓰기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글=이시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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