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년(老年)을 맞이하려면
행복한 노년(老年)을 맞이하려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0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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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도 클리셰가 있다. 청년은 도전적이고 중년은 묵직해야 하며, 노년은 지혜로워야 한다. 왠지 이런 인식은 진부(陳腐)하지만 몹시 익숙하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인간 수명이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실제 늘어난 것은 ‘노년’이다. 이 때문에 전체 수명이 덩달아 늘어난 것뿐이다. 얼마 전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에 따르면, 과거의 중년이 지금은 청년(18~65세)이며, 과거의 노인은 지금의 중년(66~80세)이 되었다.

생애주기의 특정 시절만 비약적으로 늘어난 상황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요구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면서도 다른 세대보다 가진 것이 많은 ‘시니어’라는 새로운 세대다. 지금껏 노년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하고 올바른 모습은 무엇이었나? 지상의 즐거움을 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명상에 몰두하고 지혜에서 우러나온 잠언(箴言)을 생산하며 웰다잉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웰다잉은 한 인간으로서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한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절대 아니다.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태도에 있다. 길어진 노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나이는 먹되 마음이 늙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그리고 영혼과 마음을 젊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다. 노년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시니어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낭만과 주름살의 화해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청년보다 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시니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노인이면서 운동선수일 수 있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포기’를 포기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죽음이 훨씬 더 미뤄진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당연히 죽음을 염두에 둔 채 삶을 배우는, 보다 고차원적인 고뇌가 필요해졌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는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는 “철학은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끝끝내 완전히 숙련되거나 완벽히 지혜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협주곡은 무사히 완성된다. 여러분은 부모 혹은 조부모의 얼굴에서 문득 아이의 표정을 읽은 적이 있는가. 60~70세가 넘어가도 겉보기에나 진중할 뿐, 그 알맹이는 그렇지 않다. 이제 나이에서 불필요한 부담이나 장식을 벗겨 내자.

‘나이듦의 품격’의 저자인 프랭크 커닝햄은 나이듦을 영성 훈련에 비견했다.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검불은 걸러내며, 금방 타오르는 불꽃은 주의하고, 우리의 성장을 도와준 것들은 꽉 붙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영성은 아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다소 모호한 용어임이 틀림없다. “나는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성적이야!”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영성은 넓은 의미에서 마음의 움직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당혹스럽게 하는 내적 절박함 곧 내적 공허를 경험하며, 이 공허가 채워지기를 갈망한다. 태초부터 내적인 공허는 인간이 경험하는 허기(虛氣)다. 그러므로 영성은 우리 삶의 모든 수준을 말한다. 가족과 일, 놀이와 자선활동, 친밀감과 같은 일상의 경험들도 광의(廣義)의 영성에 포함된다. 애덕(愛德)은 영성의 본질이다. 애덕이 없다면 영성은 일차원적인 자기 응시에 불과하다.

프랭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살아온 기억들을 되돌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는 것이며, 그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예(禮)를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아름답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친밀함을 키우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쇠약해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야 하며,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쓰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은혜로운 삶을 살았고, 여태껏 받은 모든 은혜를 의식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이젠 시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됐다. 단 1분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자.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한 황금시간이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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