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해결해야 할 질문
우선 해결해야 할 질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4.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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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각종 학생평가가 어김없이 진행된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교별 중간고사가 이어지고, 초등학교도 과정 중심의 수행 평가가 부분적으로 시작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평가는 채점보다 점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고, 이 때문에 평가의 목적이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더 많이 맞추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맘때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자연스레 ‘공부는 왜 하는 걸까?’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곤 한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을 학생들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학생들이 수긍할 답은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공부를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시점부터 이런 질문은 ‘터무니없는 질문’ 취급을 받기에 이른다. 어른이나 선생님은 ‘그런 질문할 시간에 글 한 자라도 더 읽으라’는 식으로 타박을 주곤 한다. 너무 무성의하고, 구시대적인 답변이다. 사실, 그런 것은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질문인데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 주려는 학부모나 교사가 주변에 제법 많아진 것 같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 현 사회상 등을 예로 들며 학생들에게 공부의 동기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그런 설명은 어딘지 위태롭고 불안해 보이고, 학생들에게 속 시원한 답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던 중에 필자는 4년에 걸친 교육학 스터디그룹 활동을 통해 그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서울대 이홍우 교수는 그의 저서 <교육과정 탐구>에서 핸슨의 ‘의미로서의 문화’를 인용하며 인간의 ‘행동’에 관해 설명한다. 핸슨은, 사람의 행위가 두 가지 기준을 따르는데, 하나는 행위자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하나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보고 앞엣것을 ‘개인적 기준’, 뒤엣것을 ‘제도적 기준’이라고 했다. 또 우리가 어떤 행동의 의미를 개인적 기준으로 물을 때는 ‘동기’라는 단어를, 제도적 기준으로 물을 때는 ‘이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핸슨의 이 구분법은, 우리가 행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 그 행위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가령 누군가가 쇼핑점에서 붉은색 실크 옷을 샀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그(녀)에게 그 옷을 산 ‘동기’를 물을 수 있고, 돌아오는 대답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붉은색을 좋아한다거나 실크의 촉감이 좋아서라는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옷을 산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잠시 머뭇거릴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서 산 옷에 이유까지 달아야 하느냐는 식의 반응이 뒤따를 것이다.

이처럼 ‘동기’와 ‘이유’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부를 왜 하는 걸까?’라는 질문의 답에 대한 접근을 우리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한다는 동기를 부여했다고 가정할 때, 정작 공부하는 학생은 좋은 대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며 그런 동기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동기 부여’에 실패한다면 교사들은 어떤 이유로 학생들을 교실에 앉혀 두어야 하겠는가?

안타깝게도 ‘공부를 왜 하는 걸까?’라는 질문은 학생의 ‘동기’적 측면에서 시작된 질문으로 보인다. 이런 질문이 자조적으로 비치는 것은, 행위자 자신이 시험 결과를 보고 나서 내심 ‘이렇게 공부해서 어디에 써먹겠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질문이 되려면 ‘공부하는 이유는?’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공부가 필요 없다 해도, ‘공부’라는 행위를 기준으로 보면 그 안에서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교사라면 지금이라도 ‘공부의 이유’를 공부해보자. 학생들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주고 거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면, 평가도 그때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심문규 다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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